1930년대 일본 사회에서는 최승희의 무용 작품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녀의 얼굴과 눈이 아름답고, 그녀의 신체적 조건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는 1938년의 미국 공연이나 1939년의 유럽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미 일본인 신문인 <신세카이 아사히신문(新世界朝日新聞)>의 1938년 1월13일자 영문판(7면)은 1월1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최승희가 진실로 아름다웠다”면서 그것은 선착장에 출영을 나갔던 “기자와 사진기자들의 일치된 인상”이었다고 보도했다. 1938년 1월27일자 <신세카이 아사히신문> 영문판(7면)도 그녀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고 보도하면서 기사의 제목을 “조선인 무용가의 아름다움이 LA를 눈부시게 했다”고 정했다.
최승희의 아름다움을 치하하는 내용은 대부분 그녀의 미모(美貌), 즉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그녀의 명모(明眸), 즉 아름다운 눈에 감탄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1941년 3월9일자 <오사카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 7면)> 나고야판은 최승희가 세계순회공연에서 돌아와 가진 첫 번째 <귀조(歸朝)기념공연>을 보도하면서 그녀를 “명모의 무희(明眸の舞姬)”라고 불렀다.

인기 작가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최승희의 미모보다 무용하기에 적합한 그녀의 몸매에 주목했다. 그는 <문예(文藝)>지 1934년 11월호에 기고한 <조선무희 최승희(朝鮮舞姬崔承喜)>라는 글에서 “여류 신진 무용가 중에 일본 제일은 ... 서양무용에서는 최승희”라고 단정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기에 충분할 만한 것을 최승희가 가지고 있다”면서 첫 번째로 “훌륭한 체구”를 꼽았다.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훌륭한 체구”라고 말한 것은 체력과 체형을 모두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최승희가 키가 크고 균정미(均整美)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여성잡지 <후진구라부(婦人俱樂部)> 1936년 10월호에 실린 최승희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녀의 키는 5척4촌2분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164센티미터이다. 1936년에 실시된 경상도 울산의 위생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 남성의 평균키가 164센티미터였다. 최승희는 조선인 남성의 평균 키를 가졌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조건을 가진 일본인 남성의 평균키는 158센티미터였고, 일본인 여성의 신장 추정치는 140센티미터 후반~150센티미터 초반이었다. 따라서 최승희는 대부분의 일본인 남성보다 키가 컸고, 일본인 여성들에 비해서는 어깨 위만큼이 더 컸다.

최승희는 키가 컸을 뿐 아니라 몸에 균정미(均整美)가 있다고 평가되곤 했다. 일본의 잡지 <모던일본(モダン日本)> 1935년 9월호에 실린 최승희의 기고문의 제목이 “사지의 균정미부터(四肢の均整美から)”였다. 균정미란 체형이 균형이 잡혀서 아름답다는 뜻이다. 일부 기록에는 균정미를 8등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8등신이라는 개념은 원래 서양의 개념이다. 얼굴의 길이와 신장이 1:8의 비율이면, 사람의 외형이 미학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이다. 최승희의 신체적 조건이 “8등신”이라고 검증한 문헌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최승희가 “8등신의 체형을 가졌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월간 사진잡지 <카메라 그라프(カメラ・クラブ)>의 1937년 10월호에는 <사진작화독본(寫眞作畫讀本)>이라는 별책 부록이 제공됐다. 이 별책의 41쪽에 후쿠다 카츠지(福田勝治, 1899-1991)가 촬영한 인어 의상의 최승희 사진이 실렸다.
후쿠다 카츠지는 여성 인물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한 사진작가이다. 1936년에 사진잡지 <아사히카메라(アサヒカメラ)>에 <여성의 촬영법(女の写し方)>이라는 기사를 연재했고, 1937년에 그 기사를 모아 같은 제목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의 다른 저서 <봄의 사진술(春の寫眞術, 1938)>에는 최승희의 <보살춤>과 <무당춤>, <가면무(봉산탈)>의 사진도 실려 있다.
최승희의 인어 사진(41쪽)의 왼쪽 면(42쪽)에는 이 사진에 대한 기술적 해설이 적혀 있다. 초점과 노출, 렌즈와 카메라 기종 등, 사진 촬영시의 정보와 함께 피사체(=최승희)의 외면적 특성과 사진 전체의 구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한 전문적 해설이다.

필자는 사진 자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우선 이 사진의 촬영 장소는 최승희의 무용 스튜디오였음을 알 수 있다. 최승희가 등지고 있는 벽에는 위아래의 가로 두 줄로 창문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1936년 7월에 완공된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외벽이다.
일본의 월간 건축잡지 <주택과 정원>의 1936년 9월호(3권9호, 107-111쪽)에는 도쿄 스기나미구 에이후쿠초 264번지에 신축된 최승희의 저택 사진이 7장 실렸다. 이중 110쪽 상단에 저택과 스튜디오가 모두 보이는 사진이 게재됐다.
이 사진에는 사진 오른편의 스튜디오 건물 외벽에 위아래의 두 줄로 창문이 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인어 사진의 배경과 같다. 인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스튜디오의 왼쪽에는 최승희 가족의 거주공간이 기억자로 이어져 있었다. 극장에서 촬영된 <봄의 사진술>의 작품 사진들과 달리, 인어 사진은 후쿠다 카츠지가 최승희의 저택을 방문해서 촬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에서 최승희가 착용한 의상은 인어 모양이다. 그러나 이 의상이 어떤 작품의 의상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녀의 작품 목록에는 <인어>라는 제목이 붙여진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도쿄 무용유학을 시작한 직후, 즉 그녀가 만14세였던 1926년 6월22일 도쿄의 호가쿠자(邦樂座)에서 <물고기춤(魚の踊)> 혹은 <금붕어(金魚)>라는 독무 작품을 상연한 적이 있다. 스승인 이시이 바쿠가 안무한 작품으로, 어항 속의 물고기의 헤엄치는 모습을 묘사한 동용(童踊), 즉 어린이 무용이다.

그러나 인어 사진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후에 촬영됐다. 이때 최승희는 25세로 신체적으로 완전히 성숙해서 어린아이 티가 전혀 없는 성인 여성의 모습이다. 무용 경력도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어린이춤을 추었을 리 없다. 굳이 추론하자면, <물고기춤>의 성인 버전으로 <인어춤>을 안무해서 발표했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발표된 최승희의 모든 작품을 조사해 보아도 <인어춤>이나 그와 유사한 제목의 작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진의 의상은 무대 의상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작품 상연을 위한 의상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의상의 하체 부분이 좁고 길어서 무대에서 춤을 추기에 적합하지 않다. 아마도 이 의상은 사진 촬영을 위해 따로 제작됐거나 혹은 대여한 의상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사진 속의 최승희는 무용 자세를 취하지 않고 똑바로 선 모습이다. 따라서 이 사진은 당시의 세평대로 과연 최승희가 "8등신 미인"이었는지를 검증하는 데에 사용되기에 적합하다.

얼굴의 길이를 머리끝(=정수리)에서 턱선까지 재었을 때 최승희의 신체는 7.3등신쯤 되었다. 그리고 얼굴 크기를 이마 상단에서 턱선까지 잡으면 자로 잰 듯한 8등신이다. 그리고 신체 각 부분, 즉 턱, 가슴, 배, 둔부, 무릎, 발목 등이 8등신이 규정한 각각의 등위선에 부합한다.
조선시대 한국여성은 평균 6.4등신, 해방된 이후 1978년까지도 6.8등신에 머물렀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2009년에 이르러서야 20대 한국인 여성의 평균키가 162센티미터에 이르렀고,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여성들이 체형도 평균 7.32등신에 도달했다. 따라서 한국의 여성들은 최승희 이후 70년 만에 신장과 체형의 양면에서 최승희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최승희는 이미 1930년대에 164센티미터의 키를 가졌고 체형도 8등신이거나 그에 가까웠으므로 일반인들이 보기에 경이적인 신체조건이었을 것이다. 특히 그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33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에서 활동했으므로, 평균 신장이 조선인보다 6센티미터 이상 작았던 일본인의 눈에는 최승희의 신체 조건이 오늘날의 수퍼 모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승희의 신체조건은,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지적대로, 균정미있는 8등신의 체형뿐 아니라, 힘 있는 조선무용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도 중요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는 타고난 좋은 조건의 체형을 부단한 연습으로 단련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jc, 2021/11/13; 2025/11/13; 2026/5/3)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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