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1934)>와 <검무(1934)>는 최승희의 초기 조선무용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1934년 9월20일 일본청년관에서 열린 그녀의 제1회 도쿄공연에서 초연되어 절찬을 받았고, 이후 조선과 일본과 만주 등에서 가장 빈번하게 상연되었던 작품이었다.
<승무>와 <검무>는 세계 순회공연에서도 상연됐다. 1938년 1월22일의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승무>는 2부 3연목, <검무>는 3부 4연목으로 상연됐다. 이는 이 두 작품의 미국 초연이었다. 이후 2월2일 로스엔젤레스 공연과 2월20일 뉴욕 공연에서도 <승무>와 <검무>가 상연됐다.

최승희의 유럽 데뷔공연이었던 1939년 1월31일의 파리 공연에서도 <승무>는 1부의 첫 연목, <검무>는 3부의 3번째 연목으로 상연되었고, 벨기에 브뤼셀(2월6일)과 프랑스 마르세유(3월1일), 독일 뒤스부르크(4월1일)와 네덜란드 덴하크(4월17-20일)에서도 상연되었다.
즉 최승희의 <승무>와 <검무>는 1938년 1월22일 미국에서 초연, 1939년 1월31일 유럽에서 초연되었던 것인데, 이 두 작품이 최승희 이전에 서양에 소개된 적이 있었을까?
배구자(裵龜子, 1905-2003)는 1926년 일본 텐카츠(天勝) 공연단의 일원으로 미국 순회공연을 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그녀가 조선 전통무용을 공연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1928년 텐카츠 공연단에서 독립, 배구자악극단을 결성했고, 1929년부터 조선 민요의 무용화를 시작했으나, 1937년 재혼과 함께 배구자악극단이 해체되었고 본인도 무용계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1928-1937년의 시기에 그녀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연한 적이 없었다.
한편 조택원(趙澤元, 1907-1976)은 최승희보다 1년 앞서 1937년 3월부터 9월까지 파리를 방문, 소규모 공연을 열거나 예술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파리 공연을 위해 12개의 작품을 준비했는데 그중 3개 작품이 조선무용이었고, 그중의 하나가 <승무의 인상(1933)>이었다.

조택원의 <승무의 인상>은 정확히 <승무>는 아니었고, 반주음악도 새로 작곡된 양악이었지만, 의상은 <승무>의 그것과 완전히 같았다. 따라서 조택원의 <승무의 인상>은 <승무>의 ‘인상’을 파리에 소개한 첫 작품이다. 당시 파리 오페라 극장의 감독 세르쥬 리파(Serge Lifar)가 이 작품을 절찬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작품은 1937년 9월 이후 <가사호접>이라고 개명되었다.
박영인(朴永仁, 1908-2007)도 1937년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베를린의 국립무용대학으로 유학, 이후 1945년까지 친나치 공연과 일본의 간첩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에 박영인은 독일과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서 24회의 무용공연을 열었으나 1939년 이전에 <승무>나 <검무>라는 조선 소재의 작품을 상연했다는 기록은 찾아지지 않았다.

필자가 프랑스의 일간지를 조사하는 중에 조택원과 최승희 이전에 <승무>와 <검무>가 프랑스에 소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발견됐다. 1935년 2월14일자 프랑스 일간지 <푀이예 다비드 뇌샤텔(Feuille d'Avis de Neuchatel)>에 이사벨 드브랑(Isabelle Debran)의 “코리아 방문기”가 실렸다. 이사벨 드브랑은 일본, 만주에 이어 조선을 방문한 기행문을 기고했는데, 이 기고문 중에 경성을 방문했을 때 관람한 “1천년이나 이어져온 조선의 춤”에 대해 서술했다.
이 기고문에는 이사벨 드브랑이 찍은 사진 3장이 실렸는데, 그중 2장이 조선의 무용가 사진이었다. 한 장은 <승무>와 <검무>의 의상을 입은 2명의 남성 무용수의 모습을 담았고, 다른 한 장은 양장을 한 현대적인 여성 무용수의 사진이었다. 여성 무용수는 일본식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기생의 사진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기생은 무용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사에는 “조선무용”에 대한 내용은 한 문장에 불과하고, <승무>나 <검무>라는 제목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에 고깔을 쓴 모습은 <승무>의 의상임에 분명하고, 양 손에 짧은 칼을 든 모습은 <검무>의 의상임에 틀림없다.
최승희가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검무>와 <승무>의 유럽 초연이 1939년 1월이었으나, 프랑스에서는 그보다 약 4년 전인 1935년 2월에 <푀이예 다비드 뇌샤텔>이 조선 전통의 <승무>와 <검무>를 독자들에게는 사진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jc, 2025/12/11; 202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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