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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1934공연

[도쿄1934공연] 28. 공연3부(16) <로맨스의 전망>

최승희 도쿄 데뷔공연 3부의 마지막이자 전체 공연의 마지막 작품은 군무 <로맨스의 전망>이었다. 프로그램에는 <로맨스의 전망>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16. 로맨스의 전망, 베토벤곡, 와타나베 아케보노(渡部曙), 카이 후지코(甲斐富士子), 칸수타쿠모(寒水多久茂), 김민자(金敏子), 최승희(崔承喜), 이시이 미에코(石井美笑子), 야마자키 류코(山崎龍子), 이시이 시즈코(石井靜子)

인생을 수놓는 사랑...즐겁고 달콤한 사랑, 고뇌에 찬 생각의 편린, 청춘의 희망과 애수, 소년시절의 첫사랑, 고난을 넘어 맺어지는 두 개의 심장... 이런저런 다양한 모습의 로맨스의 전망

 

 

<로맨스의 전망>8명의 무용수가 출연한 군무였다. 1부의 <생명의 춤>8명이 출연한 군무였고, 3부의 <어린이의 세계(2)><저희는>9명의 군무였지만, <로맨스의 전망>은 가장 화려하고 규모가 큰 작품이었다.

 

출연한 8명에는 칸수이 다쿠모와 이시이 미에코, 이시이 시즈코와 카이 후지코 등 이시이 바쿠의 수제자급 무용수들이 대거 포함되었고, 무엇보다도 최승희 자신이 이 작품에 출연했다.

 

<로맨스의 전망>은 도쿄 데뷔공연을 위해 안무되고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최승희의 이전 작품 중에 로맨스라는 말이 언급된 것은 <그들의 로맨스(1931)><우리들의 로맨스(1932)>이 있는데, <그들의 로맨스><희망을 안고서>로 개작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들의 로맨스><로맨스의 전망>으로 개작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었으나, <우리들의 로맨스><그들의 로맨스>처럼 남녀 2인의 중무였고, 남자 역할을 최승희가 담당했다는 점에서 공통되기 때문에, 이 두 작품은 제목이 달리 표기된 같은 작품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군무 <우리들의 로맨스>는 도쿄 데뷔공연에서 초연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로맨스의 전망>의 반주음악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작곡한 작품이라고 밝혔는데, 아마도 <로망스 1(Op.40, 1802)><로망스 2(Op.50, 1798)> 중에서 <2>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1>보다 먼저 작곡되었으나 출판이 늦어졌을 뿐이었고, 선율이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로망스 2>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기로 결심한 직후에 작곡된 작품이다. 그는 1797년 빈 체재시기에 질병과 과로에 시달리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고, 1798년에는 프라하 여행 중에 청력이 거의 상실되어 연주여행을 포기했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는 것이 음악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여기면서 절망했으나, 이내 귀가 들리지 않아도 작곡은 가능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직후에 작곡한 것이 바로 <로망스 2>이다.

 

 

최승희가 베토벤의 <로망스 2>을 자신의 도쿄데뷔공연의 피날레 작품에 사용한 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력을 잃은 좌절감을 이겨낸 베토벤의 음악을 무용작품으로 구성해 청력 상실의 위기를 극복한 스승 이시이 바쿠에게 헌정한 것일 수 있다.

 

이시이 바쿠는 19294월 큐슈 순회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지인 시마네현의 마츠에(松江)로 향하던 중 급성 홍채염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후 몇 달 동안 시각장애를 겪었다.

 

 

이시이 바쿠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도움을 받아 무대에 서기도 했고, 향후의 새로운 무용의 형식을 구상하면서 실명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 직후에 창작된 작품이 <생명의 외침(生命, 1930)>으로 19306월 일본청년관에서 초연된 바 있었다.

 

 

독립무용가로 새출발을 하게된 최승희에게는 청력을 잃은 베토벤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무용으로 안무하여 무용단의 동료들과 함께 피날레의 작품으로 상연함으로써, 시력상실을 극복한 스승 이시이 바쿠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시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jc, 202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