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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1934공연

[도쿄1934공연] 27. 공연3부(15) <어린이의 세계(2)>

최승희의 도쿄 데뷔공연 3부의 4번째 연목은 <어린이의 세계(2)>였다. 1부에서도 <어린이의 세계(1)>이라는 연목아래 <희롱()><아장아장 춤추다(ヨチヨチ)>의 두 작품이 상연됐는데, 3부에서도 다음과 같은 어린이 무용 2작품이 더 발표됐다.

 

15. 어린이의 세계(2)

A. 새 모자(しい帽子), 유만(ユーマン)작곡, 쿠루모토 아이코(汁本愛子)

B. 저희는(僕達), 슈베르트(シユーベルト)작곡, 이시이 시즈코(石井靜子), 카리카네 사다코(雁金貞子), 에노모토 코즈에(榎本梢), 기우치 나카코(木內奈嘉子), 나가야 요코(長屋陽子), 이 치키스미(市木須美), 하야미 아키코(速水明子), 테가이타 츠루코(出開田鶴子), 키요노 테루코(淸野輝子)

 

 

아쉽게도 1부의 <희롱><아장아장 춤추다>3부의 <새모자>의 반주음악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작곡자가 유만(ユーマン)이라고 명시되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찾아내지 못했다. 슈만(シユーマン)의 오탈자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그의 어린이 음악을 조사해 보기는 했다.

 

과연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은 많은 어린이 음악을 작곡했다. <어린이의 정경(Kinderszenen, Op.15, 1838)><어린이를 위한 앨범(Album für die Jugend, Op.68, 1848)>은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그러나 이 모음곡의 작품들 중에는 <희롱 혹은 장난>, <아장아장 춤추다>, <새 모자>와 연관되는 제목의 작품이 없었다.

 

 

특히 슈만의 명곡으로 알려진 <어린이의 정경>은 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작곡한 30곡의 피아노 소품 중에서 12곡을 선별하고, 1곡을 추가로 작곡해 모두 13작품으로 출판한 것인데, 여기에 누락된 작품들의 일부가 <색색깔의 나뭇잎(Bunte Blätter, Op.99, 1850)><나뭇잎 앨범(Albumblätter, Op.124, 1853)>에 수집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집들도 조사했지만, 최승희의 어린이 무용작품의 제목과 연관되는 작품들은 없었다.

 

<저희는>이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작품이라고 명시되었기 때문에 630곡에 달하는 가곡과 피아노 음악을 조사했으나 최승희의 <저희는>과 관련되어 보이는 작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도 최승희는 슈만과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악곡의 제목과는 상관없이 떠오른 영감에 따라 무용작품을 안무하고, 자신이 받은 인상에 따라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가 어린이 무용에 관심을 갖게된 것이 야마다 코사쿠의 어린이 음악 덕분이라고 서술했는데, 이들에게 어린이 무용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킨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교육가 데즈카 기시에이(手塚岸衛, 1880-1936)였다.

 

 

192212월 이시이 바쿠가 유럽으로 가는 여객선 키타노마루(北野丸)에서 일본 자유교육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즈카 기시에이를 만났다. 두 사람은 40일의 항해 기간 거의 매일 만나 몇 시간씩 담론을 나누면서 자유교육을 토론하고, 후에 이를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데즈카 기시에이는 이시이 바쿠의 베를린 체류 기간에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1924년 이시이 바쿠가 도쿄에 돌아오자 데즈카 기시에이는 무사시사카이의 무용연구소로 찾아와 두 사람이 선상에서 토론한 이론의 실천을 위해 자신은 초등학교를, 이시이 바쿠는 그에 이웃해서 무용 연구소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이 선상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학교와 무용연구소를 나란히 설립한 곳이 바로 오늘날의 지유가오카(自由)이다.

 

 

데즈카 기시에이와 협력하면서 이시이 바쿠는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 무용체조에 관심을 가졌고, 전국의 소학교(=초등학교)에 무용체조를 보급하기도 했다. 최승희는 때로 이시이 바쿠의 보조강사로서 전국에서 모여든 무용체조 교사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이같은 경험이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가 어린이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실제로 많은 어린이 무용을 안무해 발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jc, 202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