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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1934공연

[도쿄1934공연] 11. 프로그램

도쿄 데뷔공연을 위해 최승희는 16개의 작품을 준비했다. 이 연목을 수록한 프로그램은 2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공연 당일 배포되었던 소책자 형태의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전단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필자는 소책자를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이 소책자를 찍은 사진들은 참고할 수 있었다. 정방형의 8면 이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소책자의 앞표지는 웃는 얼굴의 최승희 사진 위에 프랑스어 필기체로 최승희의 첫 무용시 발표회(Le Première Récital du Poéme de lLa Dance de Sai Shoki)”라고만 썼고, 뒷 표지에는 화장품 광고가 실렸다.

 

소책자의 2쪽부터는 무용가 최승희와 그의 무용작품에 대한 짧은 소개나 비평, 그리고 공연을 축하하는 인사말들이 실려 있었다. 기고자는 평론가 우시야마 미츠루(牛山充), 음악가 야마다 코사쿠(山田耕莋),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 등 당대 일본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었지만, 기고문의 내용은 사진의 글자가 너무 작고 흐려서 읽기가 어려웠다.

 

 

전단지 형태의 프로그램은 세로 26센티미터, 가로 36센티미터의 붉은 빛 종이에 단면으로 인쇄된 것인데, 오른쪽 상단에 최승희의 무용 시연 사진이 실렸고, 이어서 16개 작품이 3부로 나누어 수록되었다. 왼쪽에는 스승 이시이 바쿠의 소개문과 최승희의 인사말이 실려 있었는데, 이중 이시이 바쿠의 최승희 소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최승희는 조선이 낳은 유일한 무용 예술가입니다. 1926(大正15), 저의 연구소에 들어온 이후, 한때 가정사정으로 고향 경성에서 연구소를 연 적도 있습니다만, 일관해서 사도(斯道=무용)에 정진하는 것이 8년에 이르렀으므로, 이번에 저의 연구소 주최로 제1회의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용예술을 창작 위주로 생각합니다. 좋은 무용수일 뿐만 아니라, 좋은 무용 창작가가 될 것을 젊은이들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작년에는 이시이 에이코의 작품 발표회를 열었고, 이번에 최승희의 작품을 여러분에게 선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드물게 보는 연구가로, 훌륭한 체격과 극적인 창의에 탁월하고, 또한 조선 향토무용의 훌륭한 무용수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어느 신인의 출발에 즈음하여 한마디 그녀를 소개하고, 대방제현의 후원을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시이 바쿠)

 

 

이 전단지에도 광고가 실렸는데, “세계적인 대사교장(世界的大社交場)”이라는 제목아래 카페 <그랜드긴자(グランド銀座)>, 댄스홀 <긴자댄스홀(銀座ダンスホール>, <아카타마회관(赤玉會館)>, <카게츠엔(花月園)댄스홀> 등의 4개 업소를 소개하는 광고문이었다.

 

예술무용 공연의 프로그램에 댄스홀의 광고가 실린 것이 다소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도쿄에서는 예술과 연예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을 때였고, 특히 예술무용과 사교무용의 열풍이 일본 전역을 휩쓸고 있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최승희와 안막은 사교무용 애호자들이 예술무용에도 관심이 깊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이 같은 광고를 모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 맨 마지막에 수록된 카게츠엔(花月園)댄스홀이 관심을 끌었다. 카게츠엔은 1914년 요코하마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업한 일본 최초의 댄스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사교댄스가 당국의 감시를 받는 이른바 풍속 산업으로 전락했지만, 1920년대의 댄스홀은 외교관과 귀족 등의 상류층이 애용하던 사교장이었고, 1930년대에도 문인과 예술인 등의 지식인들과 고위공무원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춤을 즐기던 곳이었다.

 

 

일본 최초의 댄스홀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카게츠엔이 최승희의 데뷔 공연 프로그램에 광고를 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 카게츠엔의 주소가 나와 있지 않아, 이것이 요코하마의 바로 그 댄스홀인지, 혹은 이름이 같은 도쿄 시내의 다른 댄스홀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요코하마의 카게츠엔이라면, 이 댄스홀의 광고를 따내기 위해 도쿄에서 요코하마까 마다않고 왕복했었을 안막의 수완이 돋보이는 광고라고 할 수 있겠다. (jc, 2024/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