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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1934공연

[도쿄1934공연] 8. 일본청년관

1934920, 최승희의 데뷔공연을 열었던 극장은 일본청년관(日本靑年館)이었다. 192510월에 개관한 일본청년관은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으로, 이시이무용단의 연구생들이 데뷔공연을 하는 단골 극장이었다.

 

 

첫 사례가 1928930일 데뷔공연을 한 이시이 코나미(石井小浪)이었다. 이때는 코나미가 이시이무용단을 탈퇴하기 약 1년 전이었으므로 이시이 바쿠의 후원 아래 데뷔공연을 했다. 최승희도 아직 연구생이던 시기이므로 코나미의 데뷔공연에 참가했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이시이 에이코(石井栄子)1933924(일요일)에 일본청년관에서 데뷔했고, 그 일년 뒤인 1934920(목요일)에는 최승희가 역시 일본청년관에서 데뷔공연을 열었다. 이 전례는 1935927(금요일) 일본청년관에서 데뷔한 이시이 미도리(石井みどり)1937921(화요일) 일본청년관에서 데뷔공연을 연 칸수이 타쿠시게(寒水多久茂)로 이어졌다. 일본청년관은 이시이무용단의 초기 연구생들이 졸업하던 극장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데뷔공연이 모두 9월 하순인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수업연한이 차고 독립해서 공연 활동할 만큼 실력이 향상되면 그해 9월 하순의 하루를 택해서 일본청년관에서 제1회무용발표회를 열도록 하는 것이 스승 이시이 바쿠의 방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용단을 졸업하지는 않았더라도 일정기간 이시이무용단에서 수업했던 무용가들 중에서도 일본청년관을 데뷔극장으로 선택한 경우가 있다. 이시이무용단에서 약 1개월 수업했을 뿐이었던 쿠니 마사미(邦正美)193318일 일본청년관에서 데뷔공연을 가졌고, 입단과 탈퇴를 반복하면서 약 9년동안 이시이무용단과 관계를 가졌던 조택원(趙澤元)1936331일 일본청년관에서 데뷔했다. 이들의 데뷔공연이 이시이무용단의 통과의례가 아니었다고 추정되는 것은 이들의 데뷔공연이 9월 하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시이무용단이 일본청년관을 애용했던 것은 연구생들의 데뷔공연만이 아니었다. 이시이무용단이 1930106-7일의 추계공연을 통해 무언시극 <인간예찬>을 초연하고, 1932115일 신작발표회에서 <인간궤도><마스크>를 발표했던 것도 일본청년관이었다.

 

이시이 무용단은 비중있는 연례 공연을 위해서는 히비야공회당이나 일본극장, 제국극장 등의 초대형 극장을 이용했지만, 부담이 적은 공연을 위해서는 일본청년관을 자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시이무용단이 일본청년관을 애용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1928년 일본청년관을 운영하는 대일본연합청년단(大日本聯合靑年團)<청년가요집(青年歌謠集)>을 출판했다. 이 노래책에는 20곡의 청년가요가 수록되어 있는데, 두 번째 노래가 <일본청년단가>였다.

 

<일본청년단가>의 작사자는 쇼마 교후(相馬御風, 1883-1950), 작곡자는 야마다 코사쿠(山田耕莋, 1886-1965). 독일 유학을 마치고 1914년 귀국한 야마다 고사쿠는 도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제국극장을 탈퇴하고 신무용을 독학하던 이시이 바쿠(石井漠, 1886-1962)와 함께 무용시(舞踊詩) 운동을 시작했는데, 두 사람의 우정과 협력은 평생 지속되었다.

 

 

1925년 결성된 대일본연합청년단이 일본청년관을 건축하면서 야마다 코사쿠에게 <일본청년단가> 작곡을 의뢰했고, 이시이 바쿠에게는 노래에 맞춘 무용 안무를 의뢰했던 것이다.

 

 

이시이무용단의 1928520일 오카야마(岡山)공회당 공연의 팜플렛에는 번외 작품으로 <하늘에는 푸른 구름(靑雲)><청년단가(靑年團歌)>가 수록되어 있는데, 둘 다 야마다 코사쿠가 작곡한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안무된 무용작품이었다. <청년단가>에는 “3백만 일본청년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일본청년단이 이시이 바쿠에게 <청년단가> 무용작품을 의뢰한 이래, 일본청년관과 이시이무용단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청년관은 영리재단이므로 무료대관을 허용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 밖의 편의는 얼마든지 제공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시이무용단은 일본청년관을 공연극장으로 자주 애용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jc, 2024/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