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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추도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3.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 <아사히신문> 보도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2에 있습니다.]

 

다음은 도쿄의 기록학 전문가 크누기 에나(功刀惠那) 선생이 아사히신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찾아주신 <아사히신문> 도쿄판과 오사카판의 기사이다. 두 기사는 대동소이하며, 실수나 오자까지 동일한 것으로 보아 한 기사가 다른 기사를 거의 전재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 1929 328, 오사카판>

“(제목과 소제목) 다이너마이트 폭발/ 4명 사상/ 다카라즈카 오지의 터널 공사에서/ 모닥불로 말리는 동안

 

“(기사본문) 26일 오전 8시 반 경에 효고현 다카라즈카의 변방 나가오산 중의 후쿠치야마선 6호터널의 터널 굴착 공사에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 10개가 빙결되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조선인 토공 3명이 철망 위에 올려놓고 모닥불에 말리던 중 실수로 그 안의 1개를 불 속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10개가 요란하게 폭발하여 토공 윤길문일(尹吉文一, 21) 오이근(吳伊根, 25)의 두 명은 약 20( 36미터)정도 날아가 신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참사를 당했다. 토공의 우두머리 이일선(伊日善, 25)는 대퇴부에 중상을 입고 기절했고, 인근 오두막에서 취사 중이던 동인의 처 양시선(揚時春, 19)은 안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정세화 선생이 고베중앙도서관에서 찾아낸 1929년 3월28일의 <아사히신문> 오사카판에 실린 다카라즈카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의 보도 기사. 사망 및 중경상자의 이름이 정확히 표기되지는 않았으나 사고의 정황이 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사히신문, 1929 328, 도쿄판>

“(제목과 소제목) 다이너마이트 폭발 참사/ 2명이 죽고 2명 중상/ 얼어붙은 다이너마이트를 불에 쬐다가"

 

“(기사 본문) [다카라즈카 전화] (1929 3)26일 오전 8시반경 효고현 다카라즈카 외곽의 나가오 산중의 후쿠치야마선 6호 터널 도랑굴착 공사에 사용할 다이너마이트 10개가 결빙되었으므로 조선인 토공(土工) 3명이 이를 철망 위에 올려놓고 모닥불에 말리는 중 실수로 그 중 1개를 불 속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10개가 모두 폭발해서, 토공 이길문 (伊吉文, 21) 오이근 (吳伊根, 25)의 두 명은 약 20(=36미터)이나 날아가 신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참사를 당했고, 토공의 우두머리 이일선(伊日善, 25)은 크게 중상을 입고 졸도했으며, 인근 오두막에서 식사준비 중이던 이일선의 아내 양시춘(揚時春, 19)은 얼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오사카판 <아사히신문>의 기사는 취재원을 나타내는 머리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기자가 직접 취재해서 쓴 기사이다. 반면 도쿄판에는 [다카라즈카 전화]라는 머리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화 통지로 전해진 기사이다. 오사카판과 도쿄판 <아사히신문>의 기사는 <고베신문> <고베유신일보>이 밝힌 윤길문과 윤일선의 이름을 이()길문과 이()일선으로, 여시선/김시선의 이름을 양시춘으로 보도했다. 한국에는 이()씨 성이 없으므로, 고베의 신문들의 보도가 정확할 것으로 보이며, 정홍영 선생도 고베 신문들의 기록을 따랐다. 그러나 향후 조사에서는 다른 이름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크누기 에나(功刀惠那)선생이 <아사히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낸 1929년 3월28일의 <아사히신문> 도쿄판 11면의 다카라즈카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 기사 전문. 오사카판 기사와 제목이 달라졌지만 기사 본문은 거의 전재되어 있다.

 

사고 현장의 참상은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조금 더 구체화되었다. 다이너마이트의 폭발 현장에 있던 윤길문, 오이근씨는 전신이 파손되어 20(=대략 36미터)이나 공중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윤일선씨도 중상을 입고 졸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깨어났으며, 윤일선씨의 아내 여시선/김시선/양시춘씨는 현장에서 50미터쯤 떨어진 오두막(=아마도 이들이 머물던 함바)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얼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들의 한반도 연고지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고베신문> <고베유신일보>를 통해 이들이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출신이라는 점이 확인되었으므로, 이들의 소재와 인적사항, 그리고 한국 내 연고지와 연고자를 찾는 데에는 충분한 실마리를 얻은 셈이다.

 

특히 윤길문, 오이근씨의 연고지를 찾는 데에 윤일선-여시선/김시선/양시춘씨 부부와 오이목씨의 인적사항을 조사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모두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들일뿐 아니라 서로 형제, 결혼, 친척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jc, 2021/5/3)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2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