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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추도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0. 경남 고성, 조선인 희생자들의 고향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9에 있습니다.]

 

내가 정홍영 선생의 저서 <가극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를 읽기 시작한 것은 정세화 선생이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신 그 책의 챕터 두 개부터였다. 이 책은 1997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절판됐기 때문에 아마존에서도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약 일주일 만에 정세화 선생은 그 책을 우편으로 보내셨다. 책 내용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자, 아예 책을 속달로 보내신 것이다. 저자이신 부친의 마지막 소장본이 아닌가 싶었는데, 선뜻 보내주신 것이 고마웠다. 나는 마음을 더욱 다잡고 조사에 열심을 내기로 했다.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을 읽어보니, 정홍영 선생은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대단히 실증적인 연구를 남기셨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제1부에 수록된 12개의 논문 하나하나가 현장을 직접 답사해 현지인의 구술을 토대로 써내려간 알찬 기록이었다.

정홍영 선생의 <가극의 도시의 또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은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희생자들을 찾는 출발점이었다.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의 희생자들을 조사한 내용은 그 책의 제1 2장에 나왔다. 이 책의 부록 <자료편>에는 <고베유신일보> <고베신문>의 기사 스크랩이 실려 있었다. 이 자료편을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정세화 선생께서 고베중앙도서관에 가셔서 마이크로필름을 돌려가며 기사를 찾아야 했던 수고를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고베신문> <고베유신일보> 1929 328일자 기사에서 중요한 실마리가 나왔다. 우선 <고베신문> 기사에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의 사망자 2명과 부상자 3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었고, 그들이 조선 경상남도 출신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순직자 연고지 조사 범위가 한반도 전역에서 경상남도로 축소된 것이다. 1개의 신문기사로 조사대상의 범위가 13분의1로 대폭 줄었으니 이런 것이 기록의 힘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으로 <고베유신일보>의 기사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사고를 당한 희생자들이 조선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출신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 정도면 당장 다음날 고속버스 티켓을 예매해도 될 만큼 구체적인 주소였다. 번지수까지 기록되어 있지는 않아도, 찾아가 탐문할 수 있는 지역과 관공서가 특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기사들을 읽자마자 나는 바로 고성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정홍영 선생의 방식이었다. 그도 역시 호리우치 미노루(堀内稔)선생으로부터 <고베유신일보> 기사를 전해 받자마자 바로 다음날 곤도 도미오(近藤富男)선생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었다.

 

다카라즈카시 키리하타 소재 벚꽃동산 입구 신수이 광장에 세워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지금은 구글맵으로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정홍영 선생과 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식했다. 정홍영 선생은 여러 해 동안 후쿠치야마선 철도개수공사와 조선인 순직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오셨기 때문에 그 지역과 사고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현장 답사에 나설 준비가 갗줘져 있었다. 절친 동료 곤도 선생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든든했을까?

 

나 역시 조사연구를 도와주시는 여러 선생님들이 계신다. 정세화, 곤도, 신도 선생 등이 그분들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직 이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이 모자랐고 사고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고베와 다카라즈카를 두세 번씩 방문하기는 했으나 사고 현장인 니시타니의 키리하타 혹은 다케다오 지역을 잘 몰랐고 경상남도 고성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순직자들이 종사했던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가 어떤 공사였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특히 문제의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조사연구에 필요한 배경지식과 상황 및 맥락은 정홍영 선생의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2건의 신문기사를 읽자마자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의 제1 2장을 다시 읽으면서 번역을 해나갔다. 정홍영 선생의 저서를 꼼꼼히 읽은 덕분에 나는 효고현 다카라즈카 산간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그들에게 닥친 비극적인 폭발사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 (jc, 2021/5/2)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9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