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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는 4개의 신문기사와 3장의 매장인허증에서 시작되었다. <고베신문> 등 4개 신문사의 1929년 3월28일 기사와 니시타니 촌장이 발행한 사망자의 매장 허가증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초자료가 발견된 경위는 정홍영 선생의 저서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 이하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에 기록되어 있다.
정홍영 선생은 1985년 봄, 3명의 조선인 사망자에게 발행된 매장인허증을 처음 입수했다. 그가 연초부터 “다카라즈카에 시(市)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의 료겐(良元), 코하마(小浜), 나가오(長尾), 니시타니(西谷) 각 촌의 자료 속에 조선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 조사”하던 중에, 다카라즈카 시사(市史) 편찬실의 편집담당주사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로부터 3장의 매장인허증 사본을 입수한 것이다. 정홍영 선생은 이를 근거로 고베수도공사(1914-15년) 중에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 3인에 대한 조사연구를 시작했다.
한편 1993년 3월25일, 정홍영 선생은 조선인 관련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를 작성 중이던 무쿠게회의 호리우치 미노루(堀内稔) 선생으로부터 1929년의 다이나마이트 폭발사고를 보도한 신문기사를 입수했다. 바로 다음날 아침 정홍영 선생은 곤도 도미오 선생과 함께 타케다오(武田尾)를 답사해 64년만의 첫 제사를 드렸고, 그것이 후쿠치야마선 철도개수공사에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 2인에 대한 조사연구의 시작이었다.
이 조선인 노동자 5인의 한반도내 연고지를 찾기로 하면서 나는 정홍영 선생의 출발점을 내 출발점으로 삼기로 했다. 우선 신문기사 조사로부터 시작했다. 최승희 공연 자료를 조사하면서 중앙과 각 지역의 일본신문 조사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 갈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2020년 여름 이후 일본 내 코로나 상황은 악화되었고 무역마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일본 방문은 여전히 어려웠다. 미국과 유럽과 한국의 신문들은 어디서나 인터넷 조사가 가능하지만, 일본 신문들은 대부분 현지 도서관에 가야했고, 대개 마이크로필름을 돌려가면서 눈으로 기사를 찾아야 한다.
나는 정세화 선생께 도움을 요청했다. 한편으로는 정홍영 선생의 저서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 중에서 이 두 공사와 그 희생자들이 서술된 챕터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시기를 요청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베중앙도서관에서 해당 신문기사를 검색해 주시기를 부탁했다.
정세화 선생이 보내주신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의 제2장에는 정홍영 선생이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으로부터 받은 신문기사는 <고베유신일보(1929년 3월28일 석간)>였다. 그런데 정홍영 선생이 “만약을 위해 같은 날짜의 다른 신문을 살펴보니 <고베>, <아사히>, <마이니치> 신문 등이 각각 상당히 자세한 기사를 보도했다”고 서술한 것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정세화 선생께 다른 신문에도 이 사건이 보도되었는지 검색해 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정세화 선생은 고베중앙도서관에서 <고베신문>과 <오사카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찾아내셨다. 부친이 시작하신 조사를 아드님이 계속하시게 된 것이었다. 부친께서 “가업 외에 조사연구 작업으로 과로하시는 것이 걱정”되었고 “별세하신 뒤에도 아버지가 남기신 자료를 탐내는 사람들 때문에 불쾌하고 번거로웠다”던 정세화 선생이 20년이 지나서 다시 부친이 못 다하신 일을 계속하시게 된 것이다.
고베중앙도서관에서 찾지 못한 <아사히>와 <마이니치>의 기사는 도쿄의 쿠누기 에나(功刀恵那)선생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기록학 박사과정을 마친 후 일본국립기록원에 근무하는 에나 크누기씨는 바로 다음날 <아사히신문>의 도쿄판 기사를 찾아서 보내주었다. <마이니치신문>의 기사는 아직도 찾지 못했는데, 후일의 일본 취재를 통해 더 찾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고베유신일보>와 <고베신문>, 그리고 <아사히신문> 도쿄판과 오사카판의 기사 4건이 확보되었고, 이것이 조선인 순직자들의 연고를 찾는 내 조사의 기초자료가 되었다. (jc, 202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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