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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묵의사유2024] 1. 어쩌다 혜화동

지난 목요일(11)에 치과에 다녀왔거든요. 서울 도봉구 창동의 <우신 치과>는 독특한 진료 원칙을 지키는 듯합니다. 진료 효과를 바로바로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진료 직후 동태찌개 점심을 제공하네요.

 

이런 혜택이 <우신 치과>의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처럼 불쌍한 환자들이 대상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의 제 진료는 스케일링에 불과했으나, 동태찌개에는 제 이빨이 만족스럽고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따라 박인호 원장의 어머님과 고모님도 진료 받으시는 날이고, 제 이빨을 함께 책임져 주시는 기공사 박철호 선생도 합석하는 바람에, 원래 가족 점심이 되어야 하는 건데, 제가 끼어들게 된 거죠. 물론 뻔뻔한 저는 개의하지 않습니다. 사양은커녕 앞장서서 식당에 갔고, 함께 맛있게 먹습니다.

 

팥이 들어간 잡곡밥과 간장만으로 절인 깻잎도 좋았지만, 커다란 양푼 가득 끓여 내어온 동태찌개는 압권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맛있는 건 식탁 위로 오고가는 이야기들이네요.

 

 

어머님과 고모님이 박원장 형제 칭찬을 얼마나 하시던지, ... 오늘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고등학교 입학 시기까지만 말씀하셨는데, 다음 점심때는 박원장 형제의 대학시절과 개업 초기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다음번 진료가 기대됩니다.

 

동태찌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 암튼, 4호선 타고 집에 오다가 문득 혜화동 고개를 걸어 넘어본 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게다가 오늘 오전에는 게으름 부리다가 자락길을 못 갔기 때문에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혜화동-독립문은 꽤 자주 걸어봤기 때문에 그리 긴장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거리도 약 5킬로미터밖에 안되기 때문에, 7킬로미터의 자락길을 거의 매일 걷는 저로서는....^^

 

 

한성대입구에서 내려서 고개를 넘자 <혜화아트센터>가 눈에 들어오네요. , 내일(12)부터 유준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는 바로 그곳입니다.

 

오늘은 전시 준비를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잠깐 들러볼까? 해서 들어갔죠. 안내하시는 분이 "아직 아니예욧" 하시면서 제지하셨지만, 제가 워낙 뻔뻔하기 때문에...

 

마침 유준 선생이 피곤한 얼굴과 넋 나간 표정으로 로비를 방황하고 계시더군요. 양쪽 전시실에는 작품들이 벽에 걸릴 위치를 잡으려고 바닥에 주욱 늘어놓아져 있었습니다. 인제부터 그걸 전부 벽에 걸어야 하는 것이겠습니다.

 

 

물론 유준 선생이 직접 벽에 걸어야 하는 건 아니겠고, 큐레이팅을 맡은 전문가들이 또 계시겠지만, 그래도 유준 선생도 자식 같은 작품 하나하나가 어떻게 걸리는지 신경을 쓰시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학예회에 출연하는 딸네미를 360도 돌려가면서 이리저리 꼼꼼하게 마지막 단장을 챙기는 학부모 심정하고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는 뭐, 오래 있어야 방해만 될 것이기 때문에, 힘드시죠? 힘내세요, 축하합니다, 하는 뻔한 인사만 나누고 나왔지만, 저는 진심 이번 전시회가 성공적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관람자들의 미적 감각을 한껏 자극하고, 간간이 웃음도 유발시키게 될 것은 믿어 의심되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갑들을 활짝 열어서, 모든 그림 옆에 빨간 동그라미가 붙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시회는 내일(1/12, 금요일) 아침 11시에 시작하지만, 개막 리셉션은 모레(1/13, 토요일) 오후4시로 잡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림도 보시고, 거실이나 서재에 걸 작품을 하나씩 점찍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유준 작가가 다음 전시회를 준비할 수 있고, 또 저한테도 동태찌개와 함께 처음처럼을 사실 수 있지 않을까요?(jc, 202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