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막이 경성 시절 수렁에 빠진 최승희를 구출하고, 도쿄 시절 최승희의 무용 활동을 위해 매니저로 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막의 역할이 구조대원과 매니저에 머문 것은 아니다.
최승희가 조선무용을 시작한 것도 혼자의 결정이 아니었다. 스승 이시이 바쿠의 권유와 남편 안막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시이 바쿠는 그의 저서 <나의 얼굴(私の顔, 1940:33)>에 실린 “최승희와 조택원”이라는 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서술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 내 책임아래 도쿄에서 첫 번째 발표회를 하게 되었다. 승희의 무용에 특징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당시 빅터(레코드사)의 일로 상경 중이던 조선무용의 대가 한(성준)씨 밑에서 조선무용의 기법을 속성으로 연습하게 하고, 본인이 싫다는 것을 내가 억지로 권하여 제목도 <에헤야노아라>라고 하고, 그것을 상연한 것이 큰 평판을 얻었다,
"그 후 자신도 자주 조선풍의 무용을 상연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본인에게 있어서는 경사스러운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불과 2,3년 만에 수만 엔을 저축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또 처음에는 본인이 싫어했던 조선무용 덕분에 미국과 유럽에서 매우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다.”
이 글은 <춤추는 바보(おどるばが, 1955:122-123)>에 실린 “최승희 이야기”에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재수록되었는데, <에헤야 노아라>의 창작과정이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마침내 그(=최승희)가 첫 무용공연을 메이지신궁 외원의 청년회관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현대 무용가는 발레의 경우와 달리 각각의 특징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조선무용을 연구하고 이를 국제적인 방법으로 그 정신을 재현하는 것이 최승희를 위해서도, 세계 무용계를 위해서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싫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조선무용을 한 편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마침 방송국 일로 상경중인 조선무용의 명수 한성준 원로에게 부탁하여 두 개 정도의 조선무용을 속성으로 연습하게 한 뒤, 그 두 춤 중에서 적당히 편곡하여 제목을 <에헤라 노아라(エヘラノアラ)>로 바꿔 상연하였는데, 비상한 갈채 속에 큰 평판을 얻었고, 이로써 최승희의 이름도 단순히 내 무용단의 일원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특이한 존재로서 세계 무용계에 큰 족적을 남기는 업적을 이루게 됐다.”
이시이 바쿠의 회상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최승희가 “조선무용을 창작, 공연하기를 싫어했다”는 점이다. 이시이 바쿠는 <나의 얼굴(1940)>과 <춤추는 바보(1955)>의 두 저서에서 이 점을 강조해 서술했고, 자신이 최승희에게 조선무용을 ‘강요’했다고 서술했다.
정병호(1995:79)와 김찬정(2002:113-114)은 최승희가 조선무용 창작을 (1) 싫어했다기 보다는 주저했던 것이거나, (2) 조선무용 자체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본인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싫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3) 경성 시절에 시도했던 첫 조선무용 <영산무>가 혹평을 받는 바람에 조선무용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최승희가 당초 조선무용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면, 최승희의 마음을 되돌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승 이시이 바쿠의 강요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술가 최승희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전자들은 이시이 바쿠의 강권 못지않게 남편 안막의 격려와 내조가 최승희의 마음을 돌이켰다고 서술했다. 정병호(1995:79-80)는 “이시이 바쿠의 권고를 남편 안막도 받아 들였기 때문에 최승희는 ... 남편과 함께 14일 동안 한성준에게서 조선춤을 배웠다”고 서술했고, 김찬정(2002:114-115)은 “이시이의 이 제안을 안막에게 이야기하자 안막도 적극적으로 조선무용을 도입한 창작무용 공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최승희는 이시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 준비에 들어갔다”고 서술했다.
최승희가 조선무용을 시작한 데에도 남편 안막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jc,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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