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막은 아내 최승희가 본격 공연활동에 나섰을 때 기꺼이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지만, 최승희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앞길을 보여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결혼 직후 최승희가 무용을 포기하지 말도록 말린 것과, 도쿄 시절에 조선무용을 시작하도록 격려했던 것이 그것이다.
두 사람은 1931년에 결혼했다. 5월9일 동대문 밖의 연회장 청량관에서였다. (일부 기록에 안막과 최승희의 결혼식장이 불교사찰 청량사 혹은 영도사로 서술되어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영도사는 기억 오류이고, 비구니 사찰 청량사는 결혼식장으로 대여될 리 없었다. 청량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회장을 갖춘 요리집 청량관이 있었는데 그 연회장이 결혼식장이었다.)
결혼 직전의 최승희는 경성에서 무용 활동을 계속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 열성어린 공연활동에도 불구하고 무용연구소는 재정난에 빠졌고, 언론은 끊임없이 악성 스캔들꺼리를 찾았고, 후원자들은 최승희를 노리개로 삼으려는 흑심을 드러냈다. 염증이 난 최승희는 결혼할 결심을 했고, 오빠 최승일의 주선으로 안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최승희의 결혼으로 언론과 후원자들의 스토킹이 잦아들었다. 이들은 미혼의 최승희가 부자나 권력자의 처나 첩으로 스캔들을 일으키기를 바랬던 것처럼 보였다. 그래야 염문 기사를 양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최승희는 언론이 권하는 화려한 스캔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언론은 최승희 약혼 소식을 보도하면서 안막을 “일개 서생”이라고 폄하했다. 최승희의 스캔들 가능성이 원천 봉쇄되자 언론은 그 실망감을 안막에 대한 분노로 표출했던 것 같다. 당시 경성의 언론과 유력인사들의 무용예술에 대한 인식이 겨우 그 정도 수준이었던 것이다.
결혼으로 스캔들은 잦아들었지만 재정난은 계속됐다. 염문 가능성이 없어진 최승희에게 재정 지원할 부호와 권력자는 없었고, 일반 관객들도 미혼이 아닌 부인 무용가의 공연을 예술적으로 즐길 수준이 아니었다. 절망적 상황에 빠진 최승희는 무용연구소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무용을 포기하고 시댁에 들어가 살림이나 살겠다는 최승희를 안막이 도쿄로 불렀다. 이것이 안막의 두 번째 최승희 구출이었다. 경성에서 예술무용이 불가능함을 간파한 안막이 최승희의 가능성을 도쿄에서 개화시키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스승 이시이 바쿠가 최승희를 다시 문하에 받아들였고, 이때부터 최승희의 전성기가 준비되었다. 이때가 1933년 3월이었다.
안막은 1929년 4월 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 1935년 3월에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에 6년이 걸린 것인데, 이를 두고 안막이 휴학을 거듭했다는 오해도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당시 3년제 와세다대학교에 입학하려면 2년제 혹은 3년제의 와세다고등학원을 이수해야 했다.
안막은 학생운동 건으로 경성의 제2경기고보에서 퇴학당했기 때문에 3년제 고등학원을 이수한 후에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진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안막은 휴학 없이 6년 동안 와세다 고등학원과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졸업할 수 있었다.
안막의 전공은 러시아문학이었다는 것이 다수설이지만, 오무라 마츠오(大村益夫, 1933-2023)의 <조선근대문학과 일본(2003)>에 따르면 와세다 러시아문학과 학적부에서는 안막이 확인되지 않는 반면, 와세다 법학부의 동창회 명부에 1935년 졸업생으로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 2013년 9월10일자 <금강일보>의 칼럼에서 춤자료관의 이찬주 대표는, 와세다대학 정경학과를 졸업한 안막의 와세다대 후배 유경구(兪耿龜)를 인용해 안막이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유경구는 최승희의 한복의상과 무용 소품을 제작해 주었던 인물이었고, 한국전쟁 당시 최승희가 딸 안성희를 유경구에게 부탁하러 영변 집에 들렀던 바가 있다고 하므로, 그의 증언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안막의 전공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안막의 전공이 러시아문학이든 영문학이든, 혹은 법학이든, 최승희가 1933년 3월 다시 일본에 건너가 무용 활동을 재개하는 동안, 안막은 와세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업과 최승희 내조를 병행했던 것이다. (jc,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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