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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자서전

[6개의 오해들] <나의 자서전>이 풀어준... (3) 월반

3. 숙명여학교 월반에 대한 오해

 

평전들은 최승희의 학창시절을 서술하면서 월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최승희가 똑똑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에는 이만큼 좋은 에피소드가 없었을 것이다.

 

서만일(1957)은 최승희가 여학교 시절에 남달리 총명하고 근면하여 성적이 우수했고 마침내는 최우등생으로서 3학년에서 5학년으로 월반까지 하게 되었다고 썼다. 다카시마 유사부로(1958)당시 조선의 소학교(=초등학교)의 제도로서 성적이 좋으면 1년이나 2년까지 월반이 행해졌는데, 그녀도 월반의 혜택을 받아 서울의 숙명여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반에서 가장 키가 작고 나이도 가장 어렸다고 했다.

 

 

강이향(1993)뛰어난 성적으로 월반까지 하여 남들보다 먼저 소학교를 졸업했다고 했고, 정병호(1995)소학교는 숙명학교 보통과를 다녔다. 뛰어난 성적으로 내내 일등을 하였고 두 번이나 월반을 해 3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 공부하여 같이 입학한 동기들보다 이태나 먼저 졸업했다고 서술했다.

 

김찬정(2003)초등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한 그녀는 월반을 하여 일찍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기술했고, 정수웅(2004)소학교를 월반해서 2년이나 빨리 끝내고 입학했다고 썼으며, 배윤희(2011)공부를 잘하여 학년을 두 번씩이나 뛰어넘으면서 서울 숙명고등보통학교를 마쳤다고 썼다. 월반에 대한 기록이 없는 평전은 강준식(2012) 뿐이었다.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에도 월반 경험이 서술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카시마 유사부로의 서술과 일치한다. 즉 다카시마 유사부로는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을 읽었다는 뜻이고, 평전 집필할 때 이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문장을 조금 간결하게 다듬었을 뿐이다.

 

 

이 평전들의 서술을 종합하면 최승희는 소학교(숙명여학교 보통과) 시절에 내내 일등을 하는 등 성적이 좋았고 3학년에서 5학년으로 두 번 월반해서 남들보다 초등학교를 2년이나 빨리 졸업했고, 그 때문에 숙명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했을 때는 가장 어리고 키가 작았다고 한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 3학년에서 5학년으로 월반한 것을 두 번 월반이라고 한 것과 그 때문에 초등학교를 “2년이나 빨리졸업했다는 서술이다. 3학년에서 5학년으로 월반했다면 이는 1년 월반이다. 어떻게 2년이나 빨리 졸업했을까? 결정적으로, 당시 일본인 학생들은 5년제 소학교에 다녔지만 조선인 학생들이 다녔던 보통학교는 4년제였으므로 5학년이 있을 수 없었다.

 

사실인즉, 최승희가 보통학교를 졸업한 19223월까지는 1차 조선교육령의 적용을 받았고 그해 4월부터 2차 조선교육령이 시행되었다. 이때의 가장 큰 변화는 보통학교가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고 여고보의 학제도 3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이 때문에 1922년 보통학교 졸업생들에게 딜레마가 생겼다. 1차 교육령에 따라 졸업은 했지만 2차 교육령에 따르면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 사이에 1-2년의 보습과를 두어 이를 이수한 후에 고등보통학교에 입학시키도록 지침을 내리면서도 보습과제도의 구체적인 운영은 각 학교장의 재량에 맡겼다.

 

학교장 재량때문에 일시적으로 월반제도가 생긴 것이다. 보통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보습과를 이수하지 않고도 바로 고등보통학교에 진학시켰던 반면, 성적이 모자라면 1922년 졸업생은 2, 1923년 졸업생은 1년 동안 보습과를 이수하도록 한 것이다.

 

 

최승희는 보습과 이수 없이 숙명여고보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이것을 월반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월반 혜택을 누린 것은 최승희만이 아니었다. 숙명 보통과의 1922년 졸업생 중에서 약 3분의1이 숙명여고보로 진학했는데, 대부분은 월반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1922년 보통학교 졸업생들의 월반은 보통학교 재학 중이 아니라 졸업 후에 이뤄진 것이며, 그 혜택을 누린 것은 최승희만이 아니었다. 숙명고등보통학교 시절 최승희가 키가 작고 나이가 어렸던 것은 그가 규정(8)보다 일찍(6) 보통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지, 월반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