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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강릉2023강연] 15. 후기2-참여자들

본문에서 김병순씨의 희생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제사하고, 추도비를 세우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일었습니다. 강릉인 김병순씨의 희생을 발굴한 이래 참배묘와 추도비 건립을 거쳐,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향후 강릉-다카라즈카의 교류와 협력을 진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조사해 봤습니다.

 

우선 김병순씨의 사망사건이 있었습니다. 1914년의 일입니다.

 

 

김병순씨의 희생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정홍영, 콘도 도미오 선생입니다. 이 두 사람은 조선사 연구자 히다 유이치,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 그리고 1985년 당시 다카라즈카 시사(市史) 편집담당 주사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인터뷰 요청에 응했던 후쿠모토 지츠지(福本實二), 마츠모토 아야미(松本文美), 그리고 미쓰쿠니 히카리(光国光)씨의 증언도 중요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홍영 선생의 저서 <가극의 거리의 또 하나의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이 출판되었을 때 이를 축하하기 위한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은 이 출판기념회 참석자 명단을 작성해 보관했는데, 이 명단에 따르면 이 출판기념회의 참석자는 102명이었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은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건립하기 위해 20173월부터 20204월까지 만 3년동안 계속된 모금운동의 진행과정도 기록에 남기셨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이 모금 캠페인에는 15개 단체와 193명의 개인이 참여했습니다.

 

 

타마세 참배묘와 다카라즈카 추도비가 한국에 알려진 이래 10명의 활동가가 강릉시의 감사패 증정을 청원했고, 강릉시는 3명의 실무자(박종시, 이준하, 박인순 계장)에 의해 준비된 감사패가 김한근 강릉시장의 명의로 전달됐습니다. 이는 추도비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도록 한 나카가와 도모코 다카라즈카 시장의 노력에 상응하는 결정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이후 <무용신><팀아이>, <희망래일/대륙학교><서울대민주동문회>, <전국시민활동가연대><AOK><메아리>, <1강릉포럼><롱로드> 등의 모임에 다카라즈카의 소식이 자주 공지되었는데, 이들 단체의 회원 수를 합치면 대략 15백명쯤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다카라즈카 관련 행사에 자주 참가해 주시는데, 예컨대, 20231월에 추진된 효고/오사카 방문단에는 <무용신> 회원 30명과 <팀아이> 회원 20여명이 참여했고, 20238-9월에 실시된 강릉인권영화제 후원모금에는 10개 단체와 77명의 개인이 참가했습니다.

 

 

본문에서 김병순씨의 희생 이래 타마세 참배묘와 다카라즈카 추도비를 거쳐 인권영화제의 <타마세의 백년 전설> 상영에 이르기까지를 대략 3단계로 구분한 바 있었습니다.

 

1914년 김병순씨의 사망에서 1985년의 재발굴까지는 서너 명의 연구자들이 노력했던 단계지만, 김병순씨의 희생을 발굴한 이래 2020년 추도비가 세워질 때까지는 약 2백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추도비 이래 2023년의 강릉인권영화제까지는 한국에서만 적어도 15백명이 타마세와 다카라즈카를 인식하게 되었고, 시간과 돈을 내어 영화제에 참석한 사람들도 <조각배들의 노래> 공연단을 합쳐 약 1백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강릉에서도 점점 더 많은 분들이 다카라즈카 추도비와 타마세 참배묘를 인식하게 되고 관련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강릉과 다카라즈카의 교류와 협력은 늘어날 것입니다.

 

 

또 시간이 갈수록 상징적 교류와 협력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교류와 협력으로 진전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jc,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