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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강릉2023강연] 3. 다이너마이트 사고

오사카부와 효고현의 일본인 활동가들과 재일동포들은 2020326<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건립했습니다. 20세기초 다카라즈카 지역의 철도와 수도공사에서 사망한 5명의 조선인 노동자의 넋을 위령하기 위한 추도비입니다.

 

이 추도비는 지금도 다카라즈카시 키리하타(切畑)의 구국철 후쿠치야마선이 통과하던 제6호 터널에 가까운 곳, 벚꽃동산()의 입구, 신수이광장(親水広場) 광장에 세워져 있습니다.

 

「宝塚朝鮮人追悼碑」の前面には兵庫県の2つの主要工事で亡くなった5人の名前が刻まれており、その上には彼らを懐かしみつつも帰れなかった心情を代弁する「越鳥南枝」の文字が行書体として刻まれている。

 

김병순씨 등의 3인은 1914-15년의 고베(神戶) 수도공사에서 사망했고, 2인은 1929년 후쿠치야마선(福知山線) 철도공사 중에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 추도비를 건립하는 데에 많은 분들이 애를 쓰셨지만 그중에서도 콘도 도미오 선생은 은근하면서도 끈기 있는 리더십으로 추도비 건립을 추진하셨습니다. 그는 1983년 젊은 교사 시절에 정홍영 선생을 처음 만난 이후 그를 평생의 동료와 선배이자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1989年9月7日、兵庫県の地域放送『サンテレビ』が放送した鄭鴻永先生のインタビュー。 当時、鄭鴻永先生は「兵庫朝鮮関係研究会」の会員で、この地域の近代化のために犠牲となった朝鮮人労働者を調査し、発掘作業を続けた。

 

1985년 초겨울, 정홍영-콘도 도미오 조사팀은 JR후쿠치야마선 터널공사에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종사했고, 그중 3명이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사망한 사실을 조사해 냈습니다.

 

여기에는 다카라즈카의 재일동포 건설업자 김상곤(金相坤)씨의 전언과 기노모토()의 노인클럽 회장 사카구치 타로(坂口太郎)씨의 증언이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다만 이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사고의 날짜와 장소를 알아낸 것은 8년이 더 지난 1993325일이었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에서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죽은 조선인에 대해 사고 장소, 일시 등이 더 자세히 밝혀진 것은 고베의 호리우치 미노루(堀内稔) 씨가 보내 준 신문기사 한 장에서였다. 호리우치 씨는 PC로 조선인 관계의 고신문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하고 있었고, 내가 제공받은 다카라즈카 관련 기사는 그 밖에도 더 있었다.”

 

이 자료는 1929328일자 <고베유신일보(神戸又新日報)> 기사였습니다. 이 사고는 보도 이틀 전인 326일이었고, 이 사고로 윤길문(尹吉文), 오이근(吳伊根)씨가 사망하고, 다른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보도되어 있었습니다.

 

1929年3月26日に発生した宝塚福知山線改修工事現場のダイナマイト爆発事故を報じた<神戸又新日報>(左)と<神戸新聞>(右)の記事。 これらの記事は、鄭弘永先生の著書『宝塚と朝鮮人』(1977)の資料編にも収録されている。

 

두 연구자는 다음날인 1993326일 현장을 답사해, 사고가 발생한 곳이 후쿠치야마선 철도가 지나가던 제6호 터널 입구였던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간소한 첫 번째 위령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후 매년 326일 일본인 활동가들과 재일동포들이 위령 제사를 이어왔습니다.

 

정홍영-콘도 도미오 연구팀은 20세기 초 다카라즈카 지역의 수도공사와 철도공사에서 5인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사망한 사실을 밝혀내고, 사고가 발생한 날짜와 장소를 확인한 것입니다.

 

鄭鴻永先生の『宝塚と朝鮮人(1997)』には、舊國鐵福知山線改修工事で死亡した尹吉文、吳伊根氏の家族事項が詳しく調査&middot;記録されている。

 

이들이 발견한 사실은 단행본 <가극의 거리의 또 하나의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에 기록되어 출판됐습니다. 이 저서는 정홍영 선생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지만, 콘도 도미오 선생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2022년에 타계하신 콘도 도미오 선생의 유품을 살펴보니, 이 저서의 원고 컴퓨터 파일과 교정된 원고 프린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두 분은 리서치를 같이 하셨을 뿐 아니라 집필도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정홍영 선생이 쓰고 콘도 도미오 선생이 이를 타이핑하고 교정을 본 것이지요. 두 분의 성품으로 미루건대, 정홍영 선생은 공저로 하자고 제안하셨을 것이고, 콘도 도미오 선생은 이를 사양하셨을 것입니다.

 

鄭鴻永先生が直接踏査と聞き込みで収集した資料は、彼の著書『宝塚と朝鮮人』(1997)にそのまま収められている。

 

이 저서가 출판된 지 3년 후에 정홍영 선생이 타계하셨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은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해 추도비를 세우고 싶다는 정홍영 선생의 유지를 잊지 않았고, 20년간의 노력 끝에 2020326일 다카라즈카 키리하타에 추도비를 세우셨습니다.

 

<무쿠게통신(2020531)>에 실린 콘도 선생의 글을 보니, 추도비가 세워진 날 그는 정홍영 선생의 묘소를 방문해 추도비 건립을 보고 드렸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jc,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