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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강릉2023강연] 4. 추도비 후원자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건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935인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이 리서치로 모두 확인한 이후 30년이 걸렸고, 정홍영 선생이 타계하신 이후에도 20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의문은 콘도 도미오 선생이 남기신 추도비 건립 후원자 명단을 보고야 풀렸습니다. 저는 이 명단을 20236월에야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께서 타계하신 이후 가족 분들이 자료의 정리와 활용을 제게 위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후원자 명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前田千恵, 白井真理子, 禹初江, 高祐二, 小野英一, 斎籐一義, 韓貞愛, 李君子, 金英淑, 金石出/, 李達完, 崔玉石, 金文雄, 朴魯焄, 趙明美, 韓誠一, 張泰士, 木下達雄, 森脇洋子, 韓貞愛, 信長正義, 荒井百合子, 崔玉石, 神山省吾, 中島公司, 金文雄, 金吉浩, 金善雄, 渡辺正恵, 伊丹のかた, 竹本衣江, 宮本正明, 大島淡紅子, 韓誠一, 宮本正明, 島田和俊, 信長正義, 李達完, 竹本衣江, 斎籐一義, 韓貞愛, 李玄鎮, 小西和治, 金英淑, 朴清, 近藤富男, 阪上史子, 朴才暎, 玉野勢三, 北沢弘, 廣瀬陽一, 高橋俊興, 西村大介, 尹東柱を偲ぶ会, 金善雄, 孫栄子, 上野都, 金弘子, 金吉浩, 株式会社伯和, 森下健, 山瀬, 孫永善, 玄晴一, 高祐二, 李長根, 李順華, 京愛館, 辺順姫, 朴貞子, 尹順徳, 尹順善, 韓貞愛, 菅野裕臣, 米田千代子, 松浦弘美, 高春日, みどり, 韓貞愛, 鶴香奈子, 神谷秀明, 中村証二, 徐根植, 尹道心, 金明姫, 大阪府生野南支部, 徐文平, 上野都, 近藤富男, 斎籐一義, 藤原史朗, 田中ひろみ, 李憲台, 宮本正明, 信長正義, 朴魯焄, 永井裕二, 金文雄, 近藤富男, 小野未紗, 清谷緑, 近藤富男, 尹一仙, (社)韓国茶文化協会京都支部, 柳浅香, 川上裕子, 方政雄, 三井美穂子, 三井和夫, 宝塚市職員労働組合, 鄭一珠, 近藤富男, 坂本悦子, 西山章子, 金末子, グループモナリザ有志, 近藤富男, 近藤富男, 杉澤君子, 高祐二, 近藤富男, 鶴香奈子, 荒井百合子, ヨンソン, 信長正義, 高橋俊興, 朴鮮姫, 申鳳順, 朴とみ子, 卞光子, 柳順子, 朴徳順, 広川真佐子, 康静姫ピアノ技研いまいめぐみ, キムミョンホン, 西村大介, 小野未紗, 玉野勢三, 斉藤一義, 林栄子, 韓貞愛, 鄭花容, チアフルスポーティングクラブ, 金セアル, 金セヂュン, 黄河春, 趙洋子, 鈴木眞, 藤岡宇多子, 株式会社サンセイテクノス, 亀谷道枝, 島田和俊, 柳善子, 渡辺正恵, 古久保暢男, 川口祥子, 佐藤和子, 鄭萬佑, 李君子, 張順秋, 呉文子, 宮本正明, 山本英雄, 大庭弘義, 韓貞愛, 佐藤和子, 藤岡宇多子, 玉野勢三, 金幸代, 柿本みちよ, 久保法子, 渡辺加奈子, 足立龍枝, 上野都, きたの, 高貞子, 仁木佳代子, 民族教育をすすめる連絡会, 郭チョンイ, 在日本大韓民国民団兵庫県宝塚支部, 朴辰珠, 村尾恵子, 高成一, 金田熊二, 中村英文, 後藤勝徳, 高橋正明, 岡田浩之, 小林嘉直, 清谷緑/, 朝鮮総連宝塚支部, 兒山万珠代, 今井圭介, 森丈実, 総連伊丹支部長金炳潤, 川瀬俊治, 福田知可, 許玉姫, 朴清, 趙鏞藏, 中村忠雄, 中村末子, 今井惠, 金石出, 森一女, 佐々木基文, 徐正文, 徐根植 (총 후원 건수 198건; 15개 후원단체와 개인후원자 193명이 참여; 모금 총액 ¥1,302,800)"

 

이 명단에는 4년에 걸쳐 이루어진 198건의 모금 내역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5개 단체와 193명의 개인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130만엔이었습니다.

 

저는 이 후원자들의 배경이나 단체의 성격을 대개 모릅니다. 또 이것이 최종 명단이거나 완벽한 명단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도 갖습니다. 모금 총액이 추도비 설립에 충분했을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명단의 세 가지 특징이 눈에 띕니다.

 

 

첫째, 20173월부터 20204월까지 만 3년 동안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모금을 계속해 추도비 건립에 필요한 성금을 모은 것은 인상적인 일입니다. 혹은 필요한 액수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느라 3년이 걸렸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들째, 개인 후원 193건 중에서는 107(55%)이 일본인, 86(45%)이 재일조선인이었습니다. 일본인이 더 많았지만 재일조선인의 참여와 거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일본인과 재일조선인 양쪽으로부터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콘도 도미오 선생이 오랫동안 정홍영 선생과 함께 활동하면서 양측으로부터 신망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셋째, 후원단체 목록에는 민단 다카라즈카 지부와 총련 이타미 지부, 다카라즈카 지부가 나란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단과 총련은 정치적 입장과 운동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추도비 건립에 대해서만은 두 단체가 나란히 함께 참여했습니다.

 

두 단체의 참여 시기는 추도비 건립 직전인 20202월과 3월입니다. 추도비 건립이 확실해지자 두 단체를 접촉해 참여를 설득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설득의 주인공이 곤도 도미오 선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품과 철학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병순씨의 희생(1914)으로부터 110, 리서치가 시작(1985)된 이후 약30, 정홍영 선생의 타계(2000)로부터도 20년이 걸렸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이 추도비 건립에 이렇게 오래 공을 들였던 것은 정홍영 선생의 유지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실현되도록 추진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jc,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