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는 2019년 김발레리아 선생이 설립하셨고, 지금도 학교를 이끌고 계십니다. 김발레리아 선생 자신이 연해주 고려인의 전형입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우즈벡스탄에서 고려인 3세로 출생하셨는데, 이는 조부께서 1937년의 고려인 강제 이송으로 그곳에 정착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82년 우즈벡스탄 국립문화예술대학을 마치시고 약 10년간 활동하시다가, 1990년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이주하셨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벡스탄이 독립하자 바로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오신 것이지요. 이때 김발레리아 선생은 아버님의 교훈에 따라 고려인 민족운동에 헌신하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발레리아 선생은 다른 고려인 3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첫 번째로 시작한 일이 한국어 학습이었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 없으니 독학이었습니다. 한국어를 어떻게 독학하셨는지는 만나뵙자마자 첫 번째로 여쭤볼 생각입니다. 지금은 한국어 독해와 청해는 물론 말하기와 글쓰기가 능숙하시거든요.
다만 러시아어 자판을 가진 휴대폰으로 한국어로 문자보내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으심니다. 그래서 카톡을 잘 하시지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길고 복잡하면 한국어로 녹음하셔서 그 화일을 전송해 주십니다. 러시아식 액센트가 살짝 섞인 김발레리아 선생의 구어체 한국어는 아주 매력적입니다. 독학으로 습득한 언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SNS를 통해 처음 김발레리아 선생을 만난 것이 1년 반쯤 전입니다. 무용신 캠페인을 전해 들으시고 연해주 동포들에게도 무용‘의상’이 필요하다면서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오셨습니다.
무용신 캠페인이 연해주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김발레리아 선생의 요청이 워낙 격조가 있으셨기 때문에 ‘그러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팀아이>와 협력하여 <무용신> 캠페인을 벌였고, 두 차례에 걸쳐서 약 2백여벌의 한복과 무용의상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무용신>과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후 이미 연해주 고려인 민족학교와 협력해 오신 <대륙학교>와 <동북아평화연대>와의 교류를 통해서 김발레리아 선생이 어떤 분이신지 더 알아가게 됐습니다. 연해주에서 언론인과 한국어 교육자로 활동하셨고, 1996년 <아리랑 가무단>을 설립해서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고 계신 분이라는 점을 알게 됐지요. 대단히 열정적이고, 한번 시작하신 일을 좀처럼 중단하거나 포기하시지 않는 끈질긴 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연해주 고려인 공동체를 위해 일해 오신 만큼, 김발레리아 선생의 수상 경력도 화려합니다. 2008년에는 러시아정부로부터 “국가문화전통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고, 2012년에는 우스리스크 시정부로부터 “소수민족 문화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감사장을 수여받은 바 있습니다.
2013년에는 “러시아 소수민족 협력에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감사장, 2015년에는 연해주 주정부로부터 “<고려신문> 편집장(2004-2019)으로 재직하면서 러시아 소수민족 문화전통 발전을 도모”한 공로로 명예시민증서, 2019년에는 “연해주 고려인 문화전통에 공헌”한 공로로 다시 감사장을 수여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세종문화상 대통령상을 수상하셨습니다.
2022년 연해주의 한국영사관에 의해 세종문화상에 추천되셨을 때, 자신의 활동에 대한 소개의 글을 한국어로 작성하시고, 읽어달라고 보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간결한 문투와 직설적인 내용이 탁월했기 때문에 자구 수정 외에는 손댈 것이 없었습니다. 수상이 결정되셨을 때 바로 연락을 주셨고, 저도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강인한 함경도인의 후손이고, 우즈벡스탄과 연해주에서 민족 자존심과 자조(自助)적 행동방식을 연마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도움을 요청하셨다면, 진짜로 도움이 필요하신 것입니다. <무용신>이 지체 없이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jc,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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