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54. 도쿄 (4) 신바시의 심야식당

저녁 7시 일본국회도서관이 문을 닫자 저는 신바시(新橋)로 향했습니다. 영자지 조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흥미진진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 사업가 김재호 선생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도 같이 하기로 했고...

 

김재호 선생은 큐슈 출신으로 일본 <팀아이> 열렬 회원이신데, 도쿄와 하카타에서 요식업, 즉 식당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도쿄에 이미 4개의 식당을 개업했고, 하카타에도 식당을 운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팀아이> 회원이신 만큼 김재호 선생은 재일조선학교 후원에 관심이 깊습니다. 지난 7월 큐슈와 히로시마의 조선학교 무용부에 무용신을 전달할 때에도 동행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사업과 조선학교 후원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방안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바시(新橋)는 도쿄역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유라쿠초에서 시작되는 도쿄 최대의 먹자골목입니다. 특히 철도가 공중으로 지나가는 동안 이 철도롤 떠받치기 위해 마련된 구조물 아래 공간에 전부 식당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유라쿠초에서부터 신바시에 이르기까지 철로 아래 특색있는 식당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시간만 있다면 다들 한번쯤은 들어가서 맛깔진 음식들을 맛 보고 싶은 식당들입니다.

 

 

김재호 선생의 식당 <니다이메 우나마로(二代目宇奈まろ)>는 신바시 한가운데 있습니다. 중심도로에서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지나다니는 행인들로 복잡하지 않지만 먹자골목의 교차로의 한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사람들의 통행량은 꽤 많습니다.

 

식당은 큰 편이 아니지만 분위기가 <심야식당> 느낌입니다. 문이 두 면에 마련되어 있는데, 어느 쪽 문을 열고 들어가든 마스터를 바라보며 바에 둘러앉게 되어 있습니다. 마스터는 안쪽의 주방에서 주문받은 음식을 조리해 내줍니다. 드라마 <심야식당>과 완전히 같습니다.

 

 

김재호 선생으로부터 미리 설명을 들은 바대로 마스터는 이 식당의 마스터가 네팔인이었고, 주방 보조(수 셰프?)를 담당한 분도 네팔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연변 출신의 조선인들의 도움이 아니면 식당과 편의점을 비롯한 서비스업이 유지될 수 없는 것처럼, 도쿄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인력이 아니면 식당을 운영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김재호 선생은 더더구나 일부러 네팔인 일꾼들을 물색해서 자신의 식당에서 일해 주도록 부탁한다고 합니다. 도쿄에서뿐 아니라 후쿠오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을 들으니, 일본에 적지 않은 네팔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다른 소수민들과 힘을 합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김재호 선생이 대단하게 생각됩니다. 소수인의 입장과 심정은 소수인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도, 그것이 잘 실천되지 않는 수가 많습니다.

 

주류사회에 편입될 가능성이 많은 소수인종은 그렇지 않은 다른 소수인종과의 협력에 소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재일조선인과 네팔인들은 하는 일이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재일조선인이나 네팔인이나 주류 사회에 편입될 가능성은 물론 그럴 의사가 박약하기 때문에 협력하기가 쉬운 조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은 <니다이메 우나마로>의 메뉴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 식당의 메뉴는 일본 서민용 식사와 안주에다가 한국식 요소를 많이 가미해서 만들기 때문에, 레서피는 김재호 선생이 개발하고 있지만, 그 실제 요리는 네팔인 마스터에게도 익숙하다고 합니다.

 

특히 저한테는 입에 딱 맞더군요. 일주일 째 한국식당과는 거리가 먼 도호쿠 지방을 취재하던 끝이라 "고추장 불고기"는 축복 같은 요리였고, 직접 담근 한국식 김치"도 압권이었습니다. 김재호 선생이 추천한 <나폴리탄>도 아주 맛이 좋더군요.

 

 

도호쿠 취재와 코베 발표로 약간의 고생 끝에 아주 신나는 밤을 선사한 김재호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jc, 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