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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41. 최승희 탄생일 (6) 음력과 양력

6.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

 

서만일이 서술한 최승희의 생년월일 19121224일은, 여권신청서의 생년월일 19111224일과 날짜는 같지만 연도가 다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서만일이 최승희의 생년과 생월일 정보를 따로따로 입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예컨대, 서만일이 최승희의 생일축하 파티에 초대받았다면 그의 생일이 1224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최승희의 생년이 1912년이라는 사실은 다른 경로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따로따로 알게 된 생년과 생월일을 합쳐서 서만일은 최승희의 생년월일이 19121224일이라고 서술한 것인데, 이것이 사실과 달랐다. ‘생년이 1912이라는 점도 사실이고, ‘생일이 1224이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두 사실을 합쳐서 생년월일이 19121224이라고 하면 오류가 된다. 왜 그랬을까?

 

 

이는 최승희의 출생 당시에 조선인들이 사용하던 역법이 지금의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과는 다른 시헌력(時憲曆)이었기 때문이다. 최승희의 출생 즈음에 조선은 생일뿐 아니라 생활상의 거의 모든 날짜를 시헌력으로 계산했다. 시헌력은 완전한 음력은 아니었고 태양력과 태음력을 혼합한 역법이었지만, 태양력인 그레고리력과 구별하기 위해 흔히 음력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1895년 갑오경장을 시도한 김홍집 친일파 내각이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채택했지만,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갑오경장은 왕실과 조정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고, 경장을 주도했던 친일파들은 조선민중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다시 일본으로 도망갔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역법도 다시 시헌력으로 되돌아갔다.

 

19108월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후 가장 먼저 실시한 조치가 조선의 달력과 시간제를 폐지한 것이다. 그대신 일본식 역법과 시간제를 조선에 강요했다.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조선민력>을 제작해 보급했는데 이는 서양의 그레고리력, 즉 양력이었다. 이어서 191211일부터 일본 표준시를 조선에 강요함으로써 조선의 시간체계는 일본에 복속되었다.

 

 

일제가 조선의 역법과 시간을 폐지하고 서양식 달력과 시간을 강요한 것은 일본의 역법과 시간체계에 조선을 흡수하기 위한 편의 때문이었겠지만, 이를 강요당한 조선인들은 나라의 주권에 대한 더 근본적인 도발로 받아들였다. , 조선인들의 인식 속에서는 달력과 시간을 정하는 것은 군주의 권한인데, 그 권한을 일제에게 빼앗긴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했다.

 

따라서 조선인들은 일제가 강요한 서양식 달력과 시간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공공부문에서는 양력과 24시간제를 사용해야 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음력과 십간십이지 시간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공공영역의 양력과 사생활의 음력이 혼재된 상태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20세기 후반까지도 계속되었다.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은 음력으로 정해졌고, 24절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개인들의 생일날짜는 양력처럼 표현되더라도 실제로는 음력날짜인 경우가 많았다.

 

 

필자의 주민등록상의 생일도 양력처럼 표기되었지만 사실은 음력날짜이다. 그래서 양력으로 환산되는 생일날짜는 매년 달라진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필자는 최승희의 생일날짜도 양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음력날짜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새로 확인된 최승희의 생년월일은 19111224일이지만, 그나마 이 날짜는 양력, 즉 그레고리력에 따른 날짜가 아니라, 음력, 즉 시헌력에 따른 날짜였다.

 

최승희의 생일을 조선의 전통적인 음력 날짜로 표기하면 신해년 섣달 스무나흘이다. 음력인 신해년은 양력으로는 1911130일부터 1912217일까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최승희의 음력생일 신해년 섣달 스무나흘은 양력으로는 1912211일이었다.

 

 

서만일이 혼동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는 최승희의 생년이 양력으로 1912년이라는 것도 알았고, 생일이 음력으로 1224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양력 연도와 음력 날짜를 단순히 합쳐서 최승희의 생일이 19121224일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