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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24. 센다이 (2) 다테 마사무네

미야기현(宮城縣)의 현도 센다이(仙台)는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1567-1636)의 도시계획으로 시작된 도시입니다. 다테 마사무네는 일본 전국시대(1467-1573) 우슈(羽州)와 무쓰(奧州) 지역을 지배한 다이묘(大名), 다테 가문의 17대 당주이자 에도시대(1603-1868)에 센다이번의 초대 번주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죽은 후, 임진왜란에서 패퇴한 일본 각지의 다이묘들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후계자 지명을 둘러싸고 두 패로 나뉘어 대립했습니다.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모리 데루모토의 서군이 기후현 세키가하라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도호쿠 지역에서도 동군에 가담한 다테 마사무네가 모가미 요시아키와 함께 서군에 가담한 우에스기 가게카츠를 패퇴시켰습니다.

 

 

이후 이에야스로부터 센다이 번주로 인정받은 다테 마사무네는 자신의 거점을 이와테야마(岩手山)에서 센다이(仙台)로 옮기고, 센다이성(仙台城)을 축조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센다이 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다테 마사무네의 리더십 아래 센다이번은 도호쿠 최대 번으로 성장했고, 메이지 시대에도 도호쿠 지방 전체의 중심도시로 인정됐고, 그 여파로 일본 전국에 7개가 설치되었던 제국대학의 하나인 도호쿠제국대학(1907)도 센다이에 설립되었습니다.

 

최승희 선생의 센다이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10권에 달하는 평전과 수십 권에 달하는 연구서들에서도 센다이 공연을 언급한 것은 단 한 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야기 현립도서관의 첫 방문은 3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모르는 이유로 폐문 시간이 오후1시로 당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19364월과 5월의 <가호쿠(河北)신문> 마이크로필름을 신청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모리오카 공연이 51일이었으므로 북상 중이던 최승희 선생이 센다이 공연을 가졌다면, 그보다 며칠이라도 이른 4월말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월과 5월의 신문만이라고 해도 60일치 신문이고, 하루치 신문이 평균 8면이었으므로 약 5백면에 가까운 마이크로필름을 2시간만에 보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았으므로 각 면을 한 면씩 꼼꼼하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로필름 화면이 일정한 속도로 자동으로 스크롤되어 올라가도록 해 놓고서, 뚫어져라 화면을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사를 하다보니 자연히 사진이 게재된 기사에 집중하게 됩니다. 사진이 없더라도 제목 활자가 크면 최승희 관련기사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조사한 2달치 신문에는 최승희의 사진이 딱 2장 실려 있었습니다. 그나마 한 장은 <강담구락부>라는 잡지의 광고기사에 실린 사진이어서 센다이 공연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다른 한 장의 사진도 광고였습니다. 후지사키(藤崎) 화장품 회사의 신제품세일(新柄セル) 광고였는데 여기에 최승희의 무용사진이 조그맣게 실렸습니다. 최승희 선생이 화장품 광고에 등장한 것은 흔한 일이었으므로, 이 광고도 프린트는 했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1시에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끝까지 마이크로필름을 붙들고 있던 저는 거의 쫓겨나듯이 도서관을 나서야 했습니다. 사서들이나 신문자료 스탭들은 끝까지 친절했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서관의 관리인과 수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골적으로 딱딱한 표정을 짓더군요. 저는 저대로 억울하고....

 

암튼 센다이를 거쳐 후쿠시마의 숙소로 돌아와서 간신히 프린트해 온 두 장의 광고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사실은 꼼꼼하게 읽었다기 보다는 파일 폴더에 철해 두기 위해서 날짜와 면수 등을 확인하면서 광고문을 한번 훑어보았던 것입니다. <강담구락부> (1936) 5월호 광고는 최승희 선생의 영화 <반도의 무희>가 개봉된 뒷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어깨를 반쯤 드러낸 체크무늬 드레스를 입은 최승희 선생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이 도서관의 프린터가 문제인지 이렇게밖에 인쇄되지 않았지만, 화면으로만 보아도 대단히 선정적이었습니다. (jc, 202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