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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11. 모리오카 (5) 이시카와 다쿠보쿠

모리오카(盛岡)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 5월에 아키타(秋田) 조사를 했는데, 그때 도쿄에서 너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아키타까지 가는 기차가 없었습니다. 아오모리로 가는 도호쿠 신칸센(초록색)과 아키타로 가는 아키탄 신칸센(빨간색)은 모리오카에서 갈라지는데, 저는 그냥 모리오카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아키타로 출발하기로 했었습니다.

 

갈 때는 아키타 조사로 머리가 꽉 차 있었고, 돌아올 때는 만족스런 조사결과에 기뻐한 나머지, 모리오카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키타 조사를 위해서 하루 경유했던 곳이라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키타 자료에서 모리오카 공연 기사와 포스터가 발굴되는 바람에 이번에 다시 모리오카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거나, 발굴된 자료를 현지에서 바로바로 읽을 수 있다면 시간과 돈이 절약되었을 겁니다.) 이번에 모리오카에 도착하면서 앞으로는 인구 20만 이상의 도시는 전부 잠재적인 최승희 공연지로 생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모리오카를 몰라본 것이 또 한 가지 있었습니다. 이곳은 일본의 전설적인 단가 시인 이사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고향이더군요. 무식이 죄라고, 정말 큰 실수였습니다. 일본인의 추앙을 받는 국민 시인을 몰라본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겠지만,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최승희 선생이 여학교 시절부터 푹 빠져있었던 시인이었습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가((短歌=와카和歌라고도 하죠)는 서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나의 자서전(1936)>에서 최승희 선생은 생활 의식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작품을 찾아서 읽었다면서 특히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와 노래를 꿈속에서도 욀 만큼 애독했다고 했습니다. 이 자서전에서 최승희가 일본인의 이름을 거명한 것은 스승 이시이 바쿠 말고는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유일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최승희 선생의 최애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고향을 지나가면서도 몰랐던 겁니다. 그나마 이번에 알게 된 것도, 현립 도서관의 한 사서 분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리오카 역 앞 광장에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가 있던데, 왜 그분의 시비가 여기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를 많이 보았습니다. 쿠마모토에서 홋카이도까지 가는 곳마다 그의 시비가 있더군요. 특히 홋카이도에는 하코다테, 오타루, 아사히카와, 심지어 쿠시로에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냥 국민 시인이라 그런가보다 했거든요.

 

그랬더니 사서 분이 모리오카가 그분 고향이에요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탄생지는 모리오카 역에서 북동쪽으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히노토(日戸)촌이지만, 소학교, 즉 초등학교부터 모리오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고향으로 친다고 합니다.

 

 

지금도 히노토에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리오카의 이시카와 다쿠보쿠 사랑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모리오카의 두 강(시즈쿠시와 기타카미)가 만나는 모리오카 역 근처에는 적어도 5개 이상의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버지와의 <부자 시비>도 있고 친구과 함께 기리는 <친구 시비>도 있고, 그의 단가를 달랑 새긴 <그냥 시비>3개나 있습니다. 모리오카 역앞에 하나, 모리오카 성적 안에 하나, 그리고 기타카미카와 강변공원에 하나 있습니다.

 

 

모리오카에 23일을 머물면서 관광삼아 구경을 가본 곳이 없지만,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는 하나라도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에 모리오카 성적(城跡)공원에 갔습니다.

 

모리오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높고 한적한 곳에 시비가 세워져 있더군요. 그곳은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중학생 때 학교를 땡땡이 치고 도망 나와서 책을 읽곤 했다는 곳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그가 15세 때 지은 단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성안 풀밭에 누우니/ 15세의 마음이/ 공중에 빨려든다.(不来方のおころびて/ はれし/ 十五)” (jc, 2023/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