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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12. 모리오카 (6) <이와테일보>의 보도

최승희 선생의 모리오카 공연은 193651, 이와테현 공회당에서 열렸습니다. 이 공연은 193648일의 <이와테일보(岩手日報)>에 처음 보도됐습니다. 간략히 공연 일시와 장소를 고지한 후, 최승희 선생의 약력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여사는 10년 전 경성의 여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동경의 음악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나이의 관계상 그것이 무산된 어느 날 이시이 막씨의 무용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16세 때 이시이씨 밑에서 입문했다.

 

예도를 위해 피를 토하는 듯한 노력을 하였으나 예도에 자신이 없었던 여사는 러시아로 유학을 가기 위해 석정무용소를 사퇴하였으나 가정사정으로 경성으로 돌아와 형 승일의 후원을 받아 독립연구소를 열었고, 경성에서의 3년은 실로 고단 그 자체였다.

 

시련의 길에 정진하여 고국의 전통을 살리고자 불타는 예술표현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난해 도쿄에서 발표회를 개최하여 호평을 받았고 신흥키네마 '반도무희'에 출연하여 눈물의 반생을 그렸는데 이 영화는 현재 도쿄에서 개봉중이다.”

 

 

또 이 신문은 418일부터 <눈물의 고투사: 반도의 무희 최승희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반생을 더 자세히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7회에 걸쳐 연재된 최승희의 자서전은 제1부에서는 어린 시절, 2(419)는 심하게 아팠던 여학교 시절, 3(421)는 이시이 바쿠 문하 입문,

 

4(424)는 도쿄에서의 피나는 노력, 5(425)는 경성에서의 독립 무용활동, 6(426)는 안막과의 결혼, 그리고 7(429)는 도쿄 제1회발표회로부터 시작된 전성기의 시작을 묘사했습니다.

 

이 연재기사를 번역해서 분석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自敍傳, 1936)>과 비슷합니다. 본문 중에는 비슷한 서술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연재기사가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을 발췌 요약한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6101일 출판되었는데, <이와테일보>에 실린 <눈물의 고투사: 반도의 무희 최승희 자서전>1936418일부터 29일까지 연재됐습니다. , <이와테일보><나의 자서전>보다 시기적으로 일렀던 것이지요.

 

최승희의 첫 전기는 1935811일부터 91일까지 4회에 걸쳐 <주간 아사히>에 실린 유아사 가츠에(湯淺克衛, 1910-1982)<노도의보(怒濤)>입니다. <주부의벗(主婦之友)> 19362월호에도 <조선태생의 정열의 무희-눈물의 고투사>라는 글이 수록된 바 있었습니다.

 

또 잡지 <(キング)>19365월호에도 5쪽에 걸친 최승희의 자전적 기록 <어머니의 눈물(>)>이 게재된 바 있는데, 잡지 5월호라면 원고는 4월이나 그 이전에 마련되었을 것이므로, 이 역시 <이와테일보>의 연재기사와 비슷하거나 더 이른 자전적 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자서전(1936)>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여러차례 최승희의 자전적, 혹은 전기적인 글들이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바 있었고, 이러한 글들을 종합해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각 문헌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면 또 재미있는 내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흥미로운 점은 <이와테일보>가 신문 3면에 최승희의 자서전을 연재하는 동안, 2면에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858-1936.2.26.)의 전기를 연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이토 마코토는 제3(1919-1927)와 제5(1929-1931) 조선총독을 역임했고, 193021일 경성 공회당에서 열렸던 최승희의 제1회 경성발표회에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이와테현 출신의 사이토 마코토는 최승희가 공연을 위해 모리오카를 방문하기 두 달 전인 226일에 사망했으므로 <이와테일보>는 그의 추모를 위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모리오카를 방문한 최승희가 자신과 사이토 마코토의 인연을 언급했을 지가 약간 궁금하긴 합니다. (jc, 2023/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