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선생의 강연대로 남북관계 개선의 앞날이 상당 기간 불투명해졌습니다. “희망을 변주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게 또 한국인의 특성입니다.
동학과 의병, 독립군과 임시정부와 의열단, 반독재 학생혁명과 반쿠데타 민주화투쟁, 광주항쟁과 시민혁명을 거쳐 박근혜 탄핵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도대체가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지난한 노력이 성공해 본 적도 없습니다. 동학도, 독립운동도, 친일파 청산과 민주화도, 성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공했다면 윤석열 정부 같은 것이 선출될 리 없겠지요. 특히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노력은 70년째 경주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국제정치와 국내 정파간 권력투쟁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시민운동에도 원인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상황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이병철 선생의 말마따나 30년 후에 기회가 오더라도 또 ‘아쉬운 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민운동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선 정부와 시민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정부와 시민사회를 헷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아마도 독재시기의 국가주의 관행의 잔재 때문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처럼, 바이든 정부가 미국시민들의 의사를 모두 반영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시민운동은 윤석열 ‘정부’는 규탄할 줄 알면서도 바이든 ‘정부’가 아니라 ‘미국’을 규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라면 미국시민과의 연대와 협력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한미 시민 간에 적대감만 쌓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더욱 심합니다. 기시다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본’을 비난하면 손해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모든 시민이 기시다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극우 정책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교체하려는 일본 시민들도 있습니다. 한국 시민은 그런 일본 시민들과 교류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한국민이 박근혜를 탄핵했을 때 일본시민들은 놀랐습니다. 21세기에도 시민이 정부를 합법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음을 목격하고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국민이 윤석열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하는 패배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과 정부의 구분할 뿐 아니라 그 역할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컨대 시민운동은 한반도에서 미군을 축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부가 할 일인데, 지금은 한국 정부도 주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실제로는 미국과 전쟁도 할 수 없습니다. 전시작전권이 미군에게 있기 때문이지요.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을 반환받을 준비를 갖추고 미국도 이를 넘겨줄 의사를 발표했는데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이를 연기하고 또 연기하면서 지금은 아예 물 건너간 사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게 시민은 정부를 잘 뽑아야 하는 것이지요.
한반도가 통일되고 통일 한국이 대중, 대러 견제 역할을 맡는다 하더라도 주한 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통일 후에도 3만5천여 명의 미군이 독일에 주둔하고 있거든요. 2만8천여 명의 주한미군보다 더 많은 미군이 독일 내 5곳에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군철수는 북한이 절실하게 원하는 바도 아닙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중국에 사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바 있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김정은이 주한 미군 철수는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니라고 말한 바도 있습니다.
주한 미군은 미국 정부가 한반도 주둔의 실익이 없다고 결정할 때에만 철수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와 시민운동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의 실익이 없게 만들어 주거나, 실익에 비해 주둔 비용이 너무 클 때에만 미국은 철수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이처럼 실효성이 전혀 없는 일이 계속되는 것은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시민운동의 일과 정부의 일을 구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인 것이지요. (jc,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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