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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14학교

[대륙14학교] 28. 배은선 강연 (1) 이 한 장의 사진

대륙학교 14기의 6번째 강연은 철도박물관장 배은선 선생의 대륙철도의 역사와 의의였다. 한국철도의 역사와 대륙철도 연결의 의미를 살피는 시간이었다.

 

이 강연은 세 가지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1) 한국철도는 자발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려주었고, (2) 철도의 관점에서 한국은 이미 대륙국가임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3) 초기 한국철도는 비록 일본의 한반도와 대륙 침략 목적으로 부설되었지만, 한민족이 철도 건설의 자발성과 대륙성을 회복하면 남북한의 공존과 번영의 수단이 될 것임을 인식시켜주었다.

 

 

배은선 선생의 강연은 한국철도의 시작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됐다. 이 사진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졌으나, 그 역사적 의미는 최근 배은선 선생에 의해 제대로 해석되었다.

 

이 사진은 1897322일 오전9시 인천의 쇠뿔고개(牛角峴)에서 열린 경인철도 기공식 사진이다. 이 사진의 출처를 밝힌 보도는 없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철도사(1915)>, 혹은 인천부가 발행한 <인천부사(1933)>라고 추측되지만,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이 사진은 촬영된 지 120년이 지나도록 사진 속의 인물들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2017517일 미국인 기술자였던 해리 보스트윅(Harry R. Bostwick, 1870-1931)의 손녀 웬디 새들러(Wendy Sadler)가 전남 나주의 한국전력공사 본사를 방문해 그의 할아버지가 수집하고 소장했던 2천 건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기증했다.

 

이 자료의 일부가 201912월 서울역사박물관이 개최한 <서울의 전차> 전시회에 등장했다. 이에 배은선 선생은 설명문에 포함된 “2017년 한전에 기증된 보스트윅의 유물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졌고, 한전의 협력을 얻어 이 자료들을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조사 과정에서 보스트윅이 기공식 사진의 뒷면에 서술해 놓은 사진 속의 인물 11명의 이름/직책을 발견했다. 배은선 선생의 조사연구 덕분에 이 사진이 촬영된 지 122년 만에 사진 속 주인공들의 정체가 일부나마 밝혀진 것이다. 보스트윅의 사진 설명에는 조선인 6명과 미국인 4, 프랑스인 1명 등 모두 11명의 이름이나 직함이 서술되어 있었다.

 

우선 5명의 외국인은 1. 엔지니어 칼리(W.T. Carley); 2. 미국 무역업체 타운센드의 직원 데쉴러(D.W. Desesler); 3. 타운센드의 대표 타운센드(W.D. Townsend); 4. 인천해관장(=인천세관장)인 프랑스인 라포르(M. Laport); 5. 미국공사 알렌(H.N. Allen)이었다.

 

 

조선인 6명은 6. 한성판윤(=서울시장) 이채연(李采淵, 1861-1900); 7. 인천부윤(=인천시장) 이재정(李在正, 1846-1921); 8. 철도국장(Railroad Commissioner of Korea); 9. 서울의 외채책임자(Head of the Foreign Dept at Seoul); 10. 한국군 지휘관(Commanding Officer of the Korean Army); 11. 보스트윅의 한국인 요리사(My Korean Cook)였다.

 

이 사진에 보스트윅의 한국인 요리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정작 보스트윅이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요리사 왼쪽 옆의 검은 양복의 남자가 보스트윅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배은선 선생은 그 검은 양복의 남자는 일본인 공사감독,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 보스트윅일 것으로 짐작했다. 이같은 추측과 짐작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배은선 선생은 이 한 장의 사진이 적어도 두 가지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1) 사진 속의 조선인 관리들이 관복 대신 상복을 입은 것은 일본군이 자행한 을미사변(1895)으로 살해된 고종의 왕비 민씨의 3년상 중이었기 때문이다. (2) 고종으로부터 경인철도 부설권을 받은 주인공 제임스 모스가 사진에 없는 것은 경인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팔아넘기기 위해 요코하마를 방문,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1840-1931)와 협상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자가 일본의 무력 침탈 앞에 무기력한 조선 관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조선이 일제의 침탈을 피해 도움을 요청한 미국의 기업은 사적 이익을 위해 조선 철도를 일제에 팔아넘기고 있었던 상황을 보여준다.

 

배은선 선생이 이 사진에 “(한국철도의) 첫 삽, (그러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jc, 202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