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원영 건강법의 충실한 제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야단맞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원영 선생으로부터 “탄수화물 좀 작작 X먹어라”는 핀잔을 자주 듣습니다.^^
제가 국수를 좋아합니다. 장터국수와 칼국수, 파스타와 볶음국수, 우동과 소바, 포와 팟타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설탕을 퍼먹지 그래?” 하는 면박을 받아도 국수를 포기할 수 없더군요.
국수 중독은 아마도 40대에 시작했던 마라톤 때문이었을 겁니다. 매일 10Km 달리고, 대회를 앞두고는 20Km씩 연습했습니다. 인터넷이나 마라톤 클럽 동료들은 파스타를 적극 권했습니다. 탄수화물이 충분해야 완주할 에너지가 생긴다는 설명이었지요.
센트럴파크에서 열렸던 마라톤대회에서는 골인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베이글을 두 개씩 바나나와 함께 나눠주곤 했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뉴욕마라톤대회에서는 한 참가자가 골인 직후 샤워하다가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 저는 달릴 때마다 에너지 공급을 위해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파스타가 아주 싼 음식이죠. 한 봉지에 99센트인 파스타와 한 캔에 5달러가 안 되는 토마토소스를 가지고 몇 끼든 먹을 수 있으니까요. 존 그리샴 원작의 영화 <더 펌(The Firm, 1993)> 앞부분에 보면 가난한 학생부부 탐 크루즈와 진 트리플혼이 대학원 시절까지도 “파스타로 연명”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뭐, 30대에도 그랬으니까요.ㅋ
토마토는 사과, 당근과 함께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라고 권장되었으므로 쉽게 친해졌습니다. 지금도 저는 크림이나 오일이 아니라 토마토 파스타만 먹습니다.^^
파스타면의 식감에 만족하면서 익숙해지자 중국식 볶음국수도 곧잘 먹게 되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는 완전 국수 천국입니다. 각종 소면 국수뿐 아니라, 냉면과 밀면, 온면과 칼국수, 특히 제주도식 고기국수와 잡채의 당면에도 금방 중독됐습니다.
유럽 취재 때에도 가는 곳마다 파스타를 주문하니까 동행했던 가이드가 ‘딴 거 좀 먹어라’고 제언한 적도 있었고, 일본 취재를 다니면서 소바, 라멘, 우동에 탐닉했습니다. 태국 취재 때도 행복했던 것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싸고 맛있는 국수 종류가 열 가지도 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원영 선생도 국수에 대해서만큼은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할 겁니다.^^
그밖에도 “상에 오른 것은 다 먹는다”는 오랜 습관도 탄수화물 섭취를 가속시켰던 것 같습니다. 빵을 뭉텅이로 내주는 다이너에서도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다 먹었고, 한국식 밥상에서도 반찬은 물론 밥 한 톨도 남기지 않으려다 보니까, 자연히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이원영 건강법의 ‘저탄고지’ 원칙에는 아직 설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탄수화물은 적게, 지방은 많이 먹어야한다는 저탄고지 식이요법은 LCHF(Low Carb-High Fat) 혹은 케토제닉(Ketogenic) 식이요법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1920년대 소아 뇌전증 환자와 뇌종양 환자 치료를 위한 식이요법으로 개발되었는데, 1960년대 스웨덴에서 효과 좋은 다이어트법으로 일차 유행한 바 있고, 2014년 니나 타이슐츠(Nina Teicholz)가 <The big fat surprise>를 출판하면서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니나 슐츠의 저서가 <지방의 역설(2016년 4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이어서 엠비씨에서 <지방의 누명(2016년 9월)>이라는 다큐를 방영하면서 버터와 삼겹살 품귀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식이요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집이 센 저는 유행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처럼 매스미디어가 주도하는 유행은 그 폭풍이 가라앉고 나서 학문적 연구로 충분히 입증이 되고 난 다음에 생활 습관으로 채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결국, 저는 이원영 선생의 소식 조언은 받아들였지만, 저탄고지는 아직 탐색중입니다. 혹시 국수를 먹으면서도 저탄고지를 실천하는 방법이 있다면 참 좋겠는데요.ㅋ (jc,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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