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물을 당연시하듯이, 사람은 공기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물 밖으로 끌려나오거나, 목이 졸려 보아야,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아는 거죠. ‘물’과 ‘공기’에 해당하는 사회적 개념도 있습니다. ‘체제’입니다. 체제 속에 살면서도 그 체제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맍습니다.
대륙학교 14기의 두 번째 강연은 김진향 선생의 “분단체제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분단’은 ‘나뉘었다’는 뜻일 뿐인데, 여기에 체제(regime)이라는 말이 덧붙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분단이 워낙 고착되어서 사회의 전 영역에 위세를 떨치는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체제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게 김진향 선생의 첫 번째 문제의식입니다. 분단체제가 고착화되었다는 사실이 먼저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체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체제도 있는 법이니까요. 분단 체제라는 말이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 것은 ‘분단’ 때문입니다. ‘분단’이란 원래 하나였고, 하나이어야 마땅한 것이 나뉘었다는 뜻입니다.
물리학의 엔트로피 같은 것이지요. 자연 상태에 두면 서로 다른 요소가 섞여서 비활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안정화되게 마련인데, 인위적으로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놓으니까, 충돌이 생기고 압력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단은 필연적으로 통일을 지향합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섞이고 관용도가 높아지면서 공존하는 것이 통일입니다. 그래서 통일은 정치경제학적 엔트로피 법칙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남북한의 누구도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더라도 통일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인구가 그렇지 않은 인구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서 분단은 극복해야 할 ‘나쁜 것’이고, 통일은 지향할 ‘좋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분단의 문제는 존재론의 영역에서 가치론의 영역까지 확산됩니다.
분단은 현실이고 통일은 미현실이지만, 분단은 ‘나쁜 것’이고 통일이 ‘좋은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단은 당사자의 갈등을 상정하지만, 통일은 공존을 함의합니다. 남북의 한국인들이 통일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분단된 나라가 셋입니다. 분단 독일(1945-1990)은 45년 만에, 분단 베트남(1954-1975)은 21년 만에 통일을 이뤘습니다. 한국만 아직도 분단되어 있습니다.
베트남은 분단 첫 세대가 통일했고, 독일은 분단 이후 둘째 세대가 통일을 이뤘습니다만, 한국은 3세대로 접어든 70년째 분단입니다. 아마도 분단 3세대는 분단이 그리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분단체제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교육받으면서, 거기에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적으로 ‘기형’이고, 가치론적으로 ‘나쁜’ 분단에 적응했다는 것은, 분단이 체제로 굳어졌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매달 실시되는 민방위 훈련이 불편하지 않았던 시절은 노골적인 체제 적응의 시기입니다. 그래서 외국민, 특히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시민들을 만나면 그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일인지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의 서로 다른 국가로 인식됩니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남북의 한국인들조차 둘로 나뉜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억지로 통일할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까지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분단 체제가 공고해 졌다는 증거인 것이지요.
분단체제에서는 갈등과 전쟁의 위협이 상존합니다. 심지어 갈등과 전쟁이 홍보되기도 합니다. 분단과 갈등이 나쁜 것이고, 통일과 평화가 좋은 것임을 알면서도, 어떻게 분단 체제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을까요? 통일을 지향한다면서 분단을 인정하고, 평화를 추구한다면서 전쟁의 위협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일까요?
김진향 선생은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분단에 대한 교육의 부재”입니다. 한국 사회가 시민들에게, 분단체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계속, jc,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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