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학교 14기 첫 강연, 김준형 선생의 “국제질서의 대격변과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선택”을 통해 최근 전 지구적인 군사-외교 상황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제 나름 이해한 바를 요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조성되는 ‘신냉전’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위치, 그리고 그 속에서의 우리 <무용신>이 지향하거나 지양해야 할 일이 무엇일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제가 몸담은 <무용신>은 재외 동포 운동을 위한 모임입니다. 재일 조선인 동포와 재러시아 고려인 동포들과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그곳의 민족학교를 후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20년 3월 재일조선학교 무용부에 무용신을 선물하면서 시작됐는데, <무용신>이라는 모임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습니다. <무용신>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연해주의 고려인 동포들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고, 이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도 후원하고 있습니다.
<무용신>은 회원 수도 많지 않고, 후원의 액수나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 동포가 재외 동포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약간의 성과를 거둔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재외동포 운동은 정부 정책과 긴밀한 연동됩니다. 정부가 재외동포를, 국적에 상관없이, 한민족의 일부로 여겨 우호적인 정책을 펴면 시민단체들도 쉽고 즐겁게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부가 재외동포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시민단체들은 일하기가 무척 어렵지요.
<무용신>은 문재인 정부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고, 재일 조선학교와 재러 고려인학교를 후원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폭넓은 홍보를 통해 많은 분들의 후원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에 1천켤레 이상의 무용신을 보낼 수 있었고, 우수리스크의 민족학교에도 2백벌 이상의 한복과 무용의상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이 급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빌미로 러시아 적대정책이 시작되었고, 연해주의 고려인 동포들에 대한 지원도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경영난도 깊어졌는데, 한국 정부와 기업의 지원은 끊어진 상태입니다.
재일동포와의 상황은 더욱 처참합니다. 2000년의 6·15남북 공동선언 이래 2019년의 판문점 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이 증가하면서, 일본에서도 최근 민단과 총련의 대립이 완화되고 지역에 따라 협력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이 시작되면서, 재일동포 정책도 총련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어렵사리 조성된 해빙 분위기가 20년전으로 후퇴되었습니다.
심지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백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국인을 경찰이 수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행사가 총련 주최의 행사였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총련과 직, 간접으로 연관되는 행사와 사업은 처벌하겠다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윤석열 정부 정책에 발맞춰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을 합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김준형 선생이 강조한 “신냉전”은 국제정세와 외교관계의 변화를 가리키는 거창한 용어 같지만, 그 실상은 <무용신> 같이 작은 시민단체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른 것이지요.
사실 ‘신냉전’이라는 말은 처음이 아닙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했던 1979-1985년의 기간을 신냉전이라고 불렀으니까요. 그 ‘신냉전’은 불과 5-6년에 불과했고, 고르바체프 덕분에 냉전 자체가 종식되기에 이르렀지요.
바이든과 시진핑의 줄다리기로 시작된 이번 “신냉전”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민족이 그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외동포 조차 반목하게 하는 윤석열 정부를 종식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무용신>도 해외 동포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넓고, 깊고, 길게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c, 202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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