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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순회공연

[중남미 순회공연] 2. 푸에르토리코 공연 전후 (1) 뉴욕 <홀리데이 무용제>

최승희가 푸에르토리코 공연을 단행하기 이전 6개월은 국제 정세나 개인 상황이 모두 격동이었다. 유럽은 전쟁을 시작했고, 최승희는 순회공연을 중단하고 유럽을 탈출해 미국으로 피난해야 했다.

 

최승희가 유럽 순회공연을 중단한 것은 193991일 히틀러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유럽 대전 때문이었다. 이틀 후인 93일 영국과 프랑스가 대독일 선전포고를 발표하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아는 바로 참전하지는 않았으나 곧 참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탈리아는 1940610일에야 참전했다.) 전 유럽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1939615일 파리 샤이오 극장 공연 이후 휴식을 취하면서 신작 창작과 연습에 전념하면서 유럽 예술계의 가을 시즌을 기다리던 최승희는 모든 유럽공연 계획을 전면 취소해야 했다. 그리고 파리 소재 일본 대사관의 권고에 따라 전쟁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파리를 떠나 보르도와 마르세유로 이동하면서 이탈리아 공연을 모색하던 최승희 일행은, 결국 이탈리아도 참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귀국 대열에 참가했다. 최승희는 1939918일 마르세유에서 제3피난선 하코네마루(箱根丸)에 승선했고, 약 한 달 간의 항해 끝에 스페인의 지브롤터와 영국의 맨체스터를 경유, 대서양을 건너 19391021일 뉴욕에 도착했다.

 

 

하코네마루의 항해는, 대서양의 나쁜 일기에다가 잠수함 공격 위험에까지 노출되었던, 대단히 위험한 항해였다고 한다. 험한 파도와 피격 위험을 헤치고 대서양을 건넌 하코네마루는 19391021일 오전9시 뉴욕항 입구에 도달했고, 11시에는 브루쿨린 제11번 피어에 정박, 선객들을 내려놓았다.

 

급박하게 피난선에 승선했던 최승희 일행에게는 미국 입국 비자가 없었다. 임시 체류가 허용된 5일 동안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마련해야 했지만, 피난민이 밀려드는 혼란 중에 정상적인 비자 발급 업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5일의 임시 체류가 끝난 후, 최승희 일행은 뉴욕을 떠나야 했다. 이들은 파나마로 향했다. 파나마 해협을 지나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다. 이때 최승희 일행이 승선했던 기선의 이름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최승희 일행이 파나마에 도착하기 직전, 미국의 흥행사 메트로폴리탄 뮤지컬 뷰로(이하 메트로폴리탄)가 무선 전화로 새로운 미국 순회공연 계획을 제안했고, 최승희는 이를 즉시 받아들였다. 최승희는 파나마에서 하선, 미국으로 되돌아가는 배로 갈아타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19409월호 <삼천리>에 실린 기고문에서 최승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파나마에 가는 도중 뉴욕 매니저로부터 공연이 가능할 것 같다는 통지가 와서 파나마에서 쿠바, 플로리다를 지나서 뉴욕에 왔습니다. 파나마에서 1년에 한번 있다는 투우를 보고, 쿠바에서 룸바를 보고,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해안을 본 것이 무엇보다 좋은 기억입니다.”

 

 

최승희가 다시 뉴욕에 도착한 것은 12월초였고, 메트로폴리탄과 계약을 체결한 후 가장 먼저 일정이 잡힌 <홀리데이 무용제(Holiday Dance Festival)> 참가 준비에 돌입했다. 1226일부터 31일까지 크리스마스와 신년 사이의 휴가 시즌에 열린 이 무용제에서 최승희는 28일 저녁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6일 동안 오전과 오후, 저녁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12개의 공연으로 이뤄진 이 무용제에서, 아메리칸 발레 캐러밴(The American Ballet Caravan)7, 마사 그라함 무용단(Martha Graham and Dance Group)3개의 공연을 담당했다. 나머지 2개는 최승희와 카멜리타 마라치(Carmelita Maracci, 1908-1987)1개씩 담당했다. 마라치의 공연에는 보조 무용수 3명이 참여했지만, 12개 작품을 모두 독무로 진행한 것은 최승희가 유일했다.

 

 

링컨 커스틴(Lincoln Edward Kirstein, 1907-1996)이 단장을 맡은 아메리칸 발레 캐러밴은 뉴욕시티 발레단의 전신이고, 마사 그라함(Martha Graham, 1894-1991)은 당대 미국 최고의 무용가였다. , 최승희는 당시 미국 최고 수준의 무용가들과 함께 <홀리데이 무용제>에 참여했던 것이다. (jc, 2023/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