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승희는 서울 태생
대부분의 평전들은 일관되게 최승희의 출생지는 경성, 즉 서울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그녀가 홍천 태생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에서 최승희의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라는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89년이었고, 2006년에는 <강원도민일보>의 함광복 기자가 “우린 왜 '최승희의 홍천'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최승희의 출생지는 “강원도 홍천군 남면 제곡리 237번지 혹은 244번지”라고 주장했다.
2006년이면 최승희 탄생 1백주년(2011년)을 앞두고 남,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 각종 추모행사가 기획되면서 최승희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최승희의 홍천 출생설은 ‘새로운 발견’으로 ‘화젯거리’가 되었고 들불처럼 번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최승희 연구서들이 ‘홍천 출생설’을 기정사실로 서술한 것도 이 시기에 맞추어 집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출생설과 홍천 출생설의 두 주장에는 각각 증거가 제시되었지만 증거력은 공식 기록에 바탕을 둔 서울 출생설이 한 수 위다. 홍천 출생설의 증거들은 대부분 90년이나 지난 후의 증언들에 의존했고, 그 증언들도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천 출생을 주장한 사람들은 공식 문서의 일관된 서울 출생 기록이 왜 사실이 아닌지 설명해야 했다. 실제로 그들은 이 기록들이 상황에 따른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해방 전에는 ‘시골 출신’임을 숨기기 위함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친족들이 월북한 최승희 일가로부터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캄의 면도날 법칙에 따르더라도 홍천 출생설이 불리하다. 공식기록들이 1911년(호적)과 1922년(학적부)에 작성된 것이라면 이는 최승희가 도쿄에서 무용가가 될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기였고 ‘시골 출신’임을 숨겨야할 이유가 없었다. 또 해방 전에 작성된 공식기록들이 해방 후의 혹독한 빨갱이 사냥의 영향을 받았을 리 더더욱 없다.
결정적인 것은 1936년에 출판된 <나의 자서전>이다. 최승희는 이 자서전의 제1장에서 아버지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성이었지만, 아버지는 시골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어 농사를 짓게 하는 이른바 부재지주의 한사람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굽히거나 의지할 필요 없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최승희는 자서전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출생지가 서울이라고 자연스럽게 서술했다. 동시에 아버지의 ‘시골’을 언급함으로써 부친의 고향이 따로 있음도 밝혔다. 그 시골이 바로 강원도 홍천 남면 제곡리였다. 이 자서전이 번역되었다면 홍천 출생설은 처음부터 제기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천 출생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부수적인 소득도 없지 않다.
우선 1916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토지조사대장과 원적도를 통해 최승희의 부친 최준현이 홍천 남면 제곡리에 무려 133건의 부동산을 소유한 부재지주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에게 굽히거나 의지할 필요없”었다는 아버지에 대한 최승희의 서술은 그나마 겸손한 표현이었다.
둘째, 함광복이 주장했던 “제곡리 237번지와 244번지”는 최준현의 소유가 아니었다. 133건의 가옥과 전답과 임야를 소유했지만 최승희의 생가로 주장된 주소만은 소유지 목록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홍천 출생설이 반박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일 것이다.
셋째, 법원의 토지등기부를 통해 최준현이 1911년 6월부터 1923년 5월까지 “경성부 서부 수창동 189번지”의 가옥을 소유하면서 그곳에 거주했음이 밝혀졌다. 이 주소지는 최준현의 큰아들 최승일이 다녔던 배재고보, 큰딸 최영희가 다녔던 진명여고보, 작은아들 최승오가 다녔던 경성사범학교, 최승희가 다녔던 숙명여학교의 중심에 위치한다.
즉, 최준현은 1902년 장남 최승일의 출생 이후, 혹은 1904년 장녀 최영희의 출생 이후에 경성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녀들에게 신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최준현은 1911년 6월27일 경성의 수창동 189번지의 가옥을 매입했고, 여기서 1911년 11월24일 막내딸 최승희를 출산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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