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순회공연 중이던 최승희-안막 부부가 마르세유 공연을 3월1일에 가지기 위해 애썼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든 것은 프랑스 남부도시 공연의 일정과 동선 때문이었다.
최승희 선생은 1939년 2월26일 칸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어서 3월1일에 마르세유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같은 일정에 대해 들었던 첫 번째 의문은 최승희 선생이 어째서 마르세유보다 칸에서 먼저 공연을 했는가, 였다.
도시의 규모나 문화적 영향력으로 보아 칸은 마르세유에 비견될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마르세유는 인구 85만명(2013년 센서스 기준)으로 파리(2백22만명)에 이어 프랑스 제2의 도시이다. 같은 기준으로 칸느는 인구가 7만명, 프랑스내 66위이다.
이 같은 차이는 193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차대전 직후인 1946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칸 인구는 4만6천명이었던 반면 마르세유 인구는 63만명이었다.
요즘은 칸이 3대 국제 영화제 개최지의 하나이고 세계적인 여름 휴양지로 알려져 있어서 주민은 적더라도 찾아오는 관광객이 대단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영화제도 없었고 남유럽 휴양지로는 니스와 몬테카를로가 더 유명했다.
한마디로 1939년에도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2의 대도시였던 반면 칸은 시골 마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최승희는 칸 공연을 먼저 한 것일까?
지리적 동선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은 파리에서 칸느까지 직항 항공편이 있겠지만, 1930년대 말에는 기차를 타야했다. 파리에서 디종과 리용을 거쳐 마르세유까지 860킬로미터를 남하한 후에 다시 동쪽으로 190킬로미터를 가야 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도시 마르세유에 내려서 먼저 공연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최승희 선생은 또 마르세유 공연 이후, 스위스(주네브와 로잔느)와 이탈리아(밀라노, 플로렌스, 로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유럽공연 조사 결과 스위스와 이탈리아 공연은 계획되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승희는 2월22일 파리의 <라디오37>에 출연한 기록이 있으므로, 23일 이후에야 기차편으로 파리를 출발했을 것이다. 그는 마르세유를 경유해 칸에 도착해 공연하고(2월26일), 다시 마르세유에 돌아와 공연한 다음(3월1일), 재차 칸을 경유해 스위스 혹은 이탈리아로 가야했다.
파리->마르세유->칸->이탈리아/스위스로 이동할 수 있는 여정을, 파리->마르세유->칸->마르세유->칸->이탈리아/스위스로 복잡하게 만든 것이므로, 이 동선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공연 날짜의 요일이었다. 최승희의 칸 공연은 2월26일 일요일이었고 마르세유 공연은 3월1일 수요일이었다. 대도시 마르세유에서는 평일에, 소도시 칸느에서는 주말에 공연한 것이다. 이러한 일정도 상식적이지 않다.
공연 일정을 급박하게 잡다보면 이같은 여정이나 동선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럽 순회공연 일정은 최승희와 안막이 유럽에 도착하기도 전인 1938년, 흥행사 <국제 예술 기구>와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국제 예술 기구>는 유럽 최대 흥행사의 하나였고, 최승희 같은 정상급 무용가의 공연 일정을 급조하거나 허술하게 잡았을 리 없다.
따라서 공연 일정과 동선이 복잡해 진 데에는 주최 측의 특별한 고려가 있었고, 그것은 최승희-안막 부부의 요청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흥행사로서는 일부러 그런 일정을 잡을 리 없기 때문이다.
최승희와 안막은 왜 마르세유 공연을 칸 공연 이후로 잡도록 요청했을까? 어째서 대도시 마르세유 공연을 평일에 배치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안막과 최승희가 마르세유 공연을 3월1일에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추정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입증할 자료와 정황을 찾으러 마르세유에 갔던 것이다. (2023/2/28,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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