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조선무용 작품 <에헤야 노아라(1933)>는 출세작이자 최인기작이다. 이 작품은 중년의 조선인 남성이 술에 취하고 흥에 겨워서 경쾌하고 익살맞게 추는 춤이다. 세계 순회공연에서 최승희는 주인공을 청년으로 바꾸어서 <한량춤(1938)>으로 개작, 1938년 1월 22일의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초연했다.
<에헤야 노아라>의 주인공을 노년의 남성으로 바꾸어 재창작된 작품도 있다. 1938년 1월 8일의 <오클랜드 트리뷴(Oakland Tribune, 4면)>은 샌프란시스코 공연의 프로그램을 미리 발표했는데, 여기에 <경성의 끽연자(Seoul Pipe Smoker)>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클랜드 트리뷴>의 기사는 샌프란시스코 공연의 연목을 (1) 코믹 작품(comedy numbers), (2) 이국적 작품(exotic group), (3) 고대의 전무(ancient war dances)의 세 부류로 나누었는데, <경성의 끽연자>는 코믹 작품으로 분류됐다. 이 작품은 노인이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청년처럼 맹렬하게 춤을 추다가 이내 지쳐서 주저앉아 다시 담배를 피우면서 늙은 것을 한탄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공연 당일(1938년 1월 22일)의 프로그램에는 <한량춤>은 수록되었으나 <에헤야 노아라>와 <경성의 끽연자>는 제외되었다. 아마도 노년판인 <경성의 끽연자>가 안무 혹은 연습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성의 끽연자>는 1938년 11월 6일의 뉴욕 2차 공연에서 초연됐다. 이때는 이 작품이 다른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11월 7일의 <뉴욕타임스>는 <늙은 몽상가(Aged Dreamer)>, 같은 날짜의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Brooklyn Daily Eagle)>은 <젊은 날의 꿈(Dream of Youth)>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공연에서 뒤늦게 초연된 <경성의 끽연자> 혹은 <젊은 날의 꿈>이 유럽 순회공연에서는 활발하게 상연됐다. 1939년 1월 31일의 파리 공연에서 상연될 때는 제목이 <젊은 날의 꿈(Rêve de sa jeunesse)>이었고, “조선의 노인이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다가 갑자기 청년처럼 춤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야위고 힘없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실망하고 다시 노인으로 되돌아온다.”라고 해설되었다. 이후 <젊은 날의 꿈>은 브뤼셀과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과 덴하크, 칸과 마르세유, 뒤스부르크 공연에서 빠짐없이 발표됐다.

한편, 이 작품이 더 이른 시기에 발표된 적이 있었는지 조사했지만, 세계 순회공연 전에는 그런 제목으로 상연된 작품이 없었다. 1937년 9월에 도쿄극장에서 열린 마지막 고별 공연에서는 총 23개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에헤야 노아라>가 포함됐지만, <경성의 끽연자>나 <젊은 날의 꿈>, <한량무>는 없었다.
최승희는 마지막 도쿄 고별 공연 이후에야 중년판 <에헤야 노아라>를 청년판 <한량춤>과 노년판 <경성의 끽연자> 혹은 <젊은 날의 꿈>로 분리해 다시 안무한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완성된 청년판 <한량춤>은 1938년 1월의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초연되었고, 완성이 늦었던 노인판은 1938년 11월의 뉴욕 공연부터 상연되기 시작했다. <에헤야 노아라>와 <한량춤>과는 달리 <젊은 날의 꿈>을 상연할 때는 최승희가 가면을 사용했는데, 아마도 젊은 여성 얼굴로 노인의 얼굴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최승희는 1937년 3월 말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를 위로하는 특별 공연에서 이 작품을 초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의 제목은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1937)>였다. 창덕궁 인정전 서행각 앞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열린 이 공연에서 최승희는 이 작품을 독무로 발표했고, 반주 음악은 ‘고곡(古曲)’이라고만 기록되었다. ‘신로심불로’란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경성의 끽연자>, <노인 몽상가>, <젊은 날의 꿈>과 같은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최승희가 1930년 10월의 단성사 공연에서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던 사실이 발견된다. “청춘이 길고 늙지 않는 노래”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반주곡은 <장춘불로지곡>인데, 이는 고려시대에 당나라에서 수입된 기악+성악곡인 <보허자(步虛子)>의 다른 이름이다. 최승희는 이 음악을 반주로 <장춘불로지곡(1930년 10월)>을 안무한 것인데, 이 작품은 <영산무(1930년 2월)>에 뒤이은 그녀의 두 번째 조선무용 작품이다.
<신로심불로>의 반주 음악은 ‘고곡(古曲)’ 또는 '아악(雅樂)'이라고만 밝혀져 있었는데, 이 고곡/아악은 <장춘불로지곡>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제가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춘불로지곡(1930)>이 <신로심불로(1937)>로 이어졌다가 뉴욕 공연에서 <경성의 끽연자(1938)>, 파리 공연에서 <젊은 날의 꿈(1939)>으로 상연되기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춘불로지곡>과 <신로심불로>의 사이에는 약 7년의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에 그 두 작품이 같은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로심불로(1937)>와 <젊은 날의 꿈(1938)> 사이의 시간 간격은 1년 이내이기 때문에 이는 같은 작품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경성 초연 때의 제목대로 <신로심불로>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끝으로, 정수웅의 평전 겸 사진집 <최승희(2004)>의 247쪽에는 최승희의 북한 시기의 작품 <풍랑을 헤가르고(1949)>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작품의 의상은 <신로심불로(1938)>와 유사하다. 작품의 주인공이 가면을 쓰고 긴 수염을 달고, 기다란 밝은 색 도포를 입고 가슴에 띠를 두른 것은 완전히 같지만, 머리에 쓴 것이 갓과 두건이라는 점만 다르다.
따라서 최승희의 <신로심불로>는 1930년의 <장춘불로지곡>에서 1949년의 <풍랑을 헤가르고>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20년 동안 개작을 거듭하면서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25/12/29; 2026/4/10)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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