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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 100장면] 15. 한량춤

<에헤야 노아라(1933)>는 최승희의 조선무용 작품 중에서 출세작이자,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스테디셀러였다, 이 작품은 19315월의 경성 공연에서 <우리의 캐리커처(1931)>라는 제목으로 초연되고, 19335월의 도쿄 일본 청년관 공연에서 <에헤야 노아라>라는 제목으로 개칭, 재연되면서, 이후 1937년 말까지 일본과 조선, 만주, 타이완 등에서 계속 상연됐다.

 

그런데 이 작품은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에서 상연된 적이 없다. 1938년의 샌프란시스코 공연(122)LA 공연(23), 그리고 뉴욕 공연(222일과 116)의 프로그램에 <에헤야 노아라>는 등장하지 않았다. 1939년의 유럽 공연에서도 <에헤야 노아라>가 상연된 적이 없다. <승무(1934)><검무(1934)>가 미국과 유럽 공연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승희의 <한량춤>. <출처: 1939년 1월31일, 파리 살플레옐 극장 공연의 팸플릿, 6쪽)

 

어째서 그녀는 세계 순회공연에서 자신의 대표작인 <에헤야 노아라>를 상연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캐리커처><에헤야 노아라>로 개칭됐듯이, 세계 순회공연에서는 <에헤야 노아라>가 다른 이름으로 상연되었던 것이 아닐까? 과연 그랬다.

 

1938122일 자 <니치베이신문> 일본어판은 최승희의 샌프란시스코 공연 레퍼토리를 소개하면서 1부의 2연목을 <조선의 고귀(朝鮮高貴)>라고 보도했고, 같은 신문 같은 날짜의 영문판은 이를 <조선의 귀족(Korean Nobleman)>이라고 번역했다. “고귀(高貴)”귀족(Nobleman)”은 조선의 양반(兩班) 계급을 가리킨다.

 

최승희의 조선무용 작품 중에서 남성 성인 양반이 등장하는 작품은 <에헤야 노아라> 밖에 없다. 천민 계급이 주인공인 작품으로는 <봉산탈춤><무당춤>, <승무><기생춤>이 있었고, 평민 여성의 작품으로는 <농촌 처녀><아리랑>, 전사가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검무><고구려의 전무>가 있다. 양반이 등장하는 작품은 양반계급 어린이가 등장하는 <초립동>과 양반 계급의 성인 남성이 등장하는 <에헤야 노아라>밖에 없었다.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상연된 <한량춤>의 작품 해설. (출처: <신한민보>, 1938년 2월 10일, 2쪽)

 

그런데 1938210일 자 <신한민보(2)>는 로스앤젤레스 이벨 극장 공연의 프로그램 중에 남성 성인 양반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32연목의 <활랑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활랑춤: 전립을 제껴 쓰고 쾌자를 걸쳐 입고 거들거려 추는 춤이다. 몸짓, 어깨짓, 눈짓, 발짓, 별별 멋을 다 부리는 흥 춤이라고 본다.”

 

최승희의 <한량춤(1938)>. 사진 설명에 이 작품을 <초립동>이라고 서술한 것은 <한량춤>의 잘못이다. 무대 의상이 전립과 쾌자인 것을 보면 초립을 쓴 <초립동>과는 다르다. <한량춤>은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초연되었으므로 이 작품의 초연 연대도 1938년이다. (출처: 정병호, <춤추는 최승희> 1995년, 123쪽.)

 

<활랑춤>은 활음조(滑音調, euphony) 현상에 따라 <한량춤>을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한량(閑良)은 본래 무과에 급제하지 못한 젊은 양반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는 일 없이 놀기 좋아하는 젊은 남성이라는 뜻으로 전화되었다.

 

그러나 <에헤야 노아라><한량춤>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중년 남성 양반이 주인공이지만 후자는 청년 남성 양반이 주인공이다. 최승희는 어린 시절에 술에 취해 흥이 나서 굿거리장단에 맞춰 춤을 추곤 했던 부친을 모델로 <에헤야 노아라>를 안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에헤야 노아라>의 사진을 보면 최승희가 중년의 성인 남성으로 분장했지만, <한량춤>에서는, <신한민보>의 서술대로, 전립을 쓰고 쾌자를 입은 청년 남성의 모습이다.

 

최승희의 <한량춤(1938)>. 이 문헌에는 작품의 제목이 <화랑무>로 되어 있지만, 이는 <한량춤>의 잘못이다. 초연 시기도 1937년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공연이 열렸던 1938년 1월 22일이다. (출처: 다카시마 유사부로와 정병호 (편), <세기의 미인 무용가 최승희>, 1994년 12월20일 발행, 82쪽)

 

그러나 주인공의 노소에만 차이가 있을 뿐 <에헤야 노아라><한량춤>의 내용은 같다. “술에 취해 흥이 나서 굿거리춤을 추곤 했던 중년의 부친의 모습이나 몸짓, 어깻짓, 눈짓, 발짓, 별별 멋을 다 부리는 흥 춤을 추는 청년의 모습은 서로 비슷하다.

 

최승희의 <한량춤> (출처: 최승희의 공연 모습이 실린 신문 기사를 최승희와 안막 부부가 파리에서 직접 스크랩한 것이다. 후암문화재단 차길진 회장 콜렉션.)

 

, 최승희는 <에헤야 노아라>의 내용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인공을 중년의 남성 양반에서 청년 남성 양반으로 바꾸어서 <한량춤>을 재구성했다. 이 때문에 <한량춤>은 진행 속도도 더 빨라지고, 익살스러운 동작도 더 많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한편, <한량춤(閑良舞)><화랑춤(花郞)>이라고 기록한 문헌도 있는데, 이는 <신한민보>가 소개한 제목 <활랑춤><화랑춤>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신라의 화랑(花郞)’도 청년이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순회공연까지 최승희가 신라의 화랑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을 상연한 적은 없었다. (jc, 2025/12/28; 2026/4/4)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