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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 100장면] 24. 승무

<승무(1934)>는 최승희의 조선무용 초기 작품이다. 최승희가 경성에서 발표한 첫 조선무용은 <영산무(1930)>이지만, 일본에서 상연된 첫 조선무용은 <에헤야 노아라(1933)>이다. 19349월 일본 청년관에서 열린 제1회 도쿄 공연에서 발표된 <검무><승무>도 최승희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승무>의 사진 자료는 많은 편이다. 19341021일 <매일신보(7)>에 첫 번째 <승무> 사진이 보도된 이래,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의 조선어 신문은 물론, <경성일보><조선신문> 등의 일본어 신문에도 승무 사진이 실렸다.

 

최승희의 <승무> (출처: <부인구락부>, 1935년 3월호, 230쪽)

 

일본 매체에서도 <승무> 사진이 자주 발견된다. <아사히(朝日)신문><니치니치(日日)신문>, <미야코()신문> 등의 일간지와 <회관예술(会館芸術)><부녀계(婦女界)>, <부인구락부(婦人グラフ)><아사히그라프(朝日グラフ)> 등의 월간, 주간잡지들에도 <승무> 사진이 등장한다. 도쿄의 신문, 잡지뿐 아니라 하코다테와 아사히카와, 오사카와 고베, 도쿠시마와 우와지마 등의 지방신문에도 <승무> 사진이 다수 발견된다.

 

월간 영화잡지 <영화아사히(19392월호)>에 실린 <승무> 사진은 최승희의 미주 공연 조사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다. 이 사진은 최승희 씨의 (뉴욕) 콘서트라는 기사의 첫 면(124)에 게재된 것으로, 이 글을 쓴 뉴욕 거주 니시야마 야스지(西山保治)”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니시야마 야스지가 촬영한 최승희의 <승무> 장면. (출처: <영화아사히>, 1939년 2월호, 124쪽)

 

니시야마 야스지는 사진가 겸 작가로 <아사히카메라> 19349월호에 미국 사진계와 NRA”라는 기사를 기고한 바 있고, 194071일 자 <회관예술>에도 뉴욕의 번화가(盛場, 사카리바, さかりば)을 간다라는 르포도 게재했다. 일본어 사카리바는 원래 유곽이나 극장이 모인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930년대에는 유흥가, 쇼핑가, 식당가 등의 활기찬 곳을 가리킨다.

 

니시야마 야스지는 최승희의 두 번째 뉴욕 공연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을 전하면서, 최승희가 빼어난 미인이지만 위대한 무용가의 면모를 보인 것은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그녀에게 예술의 면에서 정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승희 공연의 부족한 점으로 반주를 지적했다. 최승희의 제1회 뉴욕 공연의 반주가 피아노였고, 2회 뉴욕 공연의 반주는 축음기 음악이었지만, 조선의 악사들이 직접 조선 음악을 연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희의 승무. (출처: <아사히그라프>, 1936년 2월15일, 54-55쪽)

 

그런데도 니시야마 야스지는 동양적 서정시대륙적 유머가 최승희 무용의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서정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에게 동양적 서정시는 호소력을 갖지 못했지만, 대륙적 유머는 동양인들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환영받았고, 따라서 최승희는 앞으로 이 방면의 작품을 더 강하고 깊이 있게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니시야마 야스지는 여러 가지 쓴소리를 했지만 동양이 내놓은 유일한 여성 무용가인 최승희에 대하여 자신은 그녀의 성정과 태도의 모든 점에서 1백 퍼센트 그녀의 상찬자(賞讚者)”이며, 그녀가 앞으로 더욱더 연구하여 미래에 발전을 이루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최승희 작품의 유머러스한 측면을 강조하면서 호감을 표시한 니시야마 야스지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 중에서 <승무> 사진을 기사와 함께 게재한 것이 시사적이다. <승무>는 조선 중기에 문예와 기예에 탁월했던 기생 황진이가 자족 선사를 유혹하는 장면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승희의 <승무>. (출처: <고베신문> 1935년 10월27일, 3쪽)

 

<승무>1939131일의 파리 공연에서도 1부의 첫 작품으로 상연됐다. 공연의 프로그램은 <승무>불자를 유혹하는 여성(Séductrice Bouddhiste)’라고 번역했고, “불교 승려로 가장하고 절에 들어가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불교도들을 타락시킨다라고 해설했다.

 

또 이 팸플릿은 세력이 너무 강해진 불교에 조선인들이 대항하던 시기를 회상시키는 춤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는데, 이는 아마도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었던 조선 중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니시야마 야스지의 <승무> 사진에도, 최승희의 몸짓과 표정에는 자족 선사를 유혹하는 황진이의 애교와 장난기가 잘 나타나 있다. (jc, 2025/12/28)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