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승희100장면

[최승희 100장면] 19. 아리랑

최승희는 세계 순회공연에서 <아리랑>을 발표했을까? 당연히 발표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뉴욕 공연의 프로그램에도 <아리랑>이 연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스코틀랜드의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 아일랜드의 <런던데리 에어(Londonderry Aire)>, 프랑스의 <아비뇽의 다리위에서(Sur le pont d'Avignon)>, 독일의 <로렐라이(Die Lorelei)>, 일본의 <사쿠라 사쿠라(さくら さくら)> 등에 해당한다.

 

최승희의 <민요조> (출처: 1936년 1월1일 <아사히그라프> 634호, 27면)

 

한국과 조선은, 두 나라로 갈라진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모두 <아리랑>을 대표적인 민요로 간직하고,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할 경우 양국의 국가 대신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한 바도 있다.

 

<아리랑>은 단일한 곡이 아니라 약 60개의 멜로디가 2천 종 이상으로 변주되는 민요이다. 그중 <경기도 아리랑><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아리랑>이 여말선초, 15세기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를 내고 있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방식으로 한국의 전통무용을 조선무용으로 양식화했던 최승희가 모처럼 떠난 세계 순회공연에서 <아리랑>을 발표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용의 반주음악은 <아리랑>이었음에 틀림없고, 그중에서도 <경기도 아리랑>을 편곡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1938년 2월23일 <동아일보(3면)> 에 실린 최승희의 <아리랑> 상연 모습

 

최승희는 미국 첫 공연이었던 샌프란시스코 공연부터 <아리랑>을 상연했다. 미국 거주 일본인 교포 신문 <니치베이신문(1938122)>의 일본어판(3)은 최승희의 발표 연목 중에 2부의 4번째 연목으로 <アリラン(아리랑)을 보도했고, 영어판(2)은 이를 <Ariran>으로 표기했다. 일본어 표기 <アリラン>은 한국어로 <아리랑><아리란>의 두 가지로 발음될 수 있으므로 틀린 번역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영문판 기자가 이를 <Ariran(아리란)>이라고 번역한 것은 그가 일본인이며 조선의 민요 <아리랑>을 몰랐다는 뜻이다.

 

최승희는 LA 공연에서도 <아리랑>을 상연했다. <카슈마이니치신문(193822)>의 영문판(5)12개의 연목을 보도하면서 4번째 연목으로 <조선 연인의 이별(Korean Sweetheart's Farewell)>을 보도했다.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낯선 고유명사 대신 작품의 내용을 서술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이라는 말을 쓴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이라는 가사 때문일 것이다. 조선인 교포 신문인 <신한민보(210, 2)>는 이 공연의 14연목을 아리랑춤이라고 표기하고 임을 이별하는 춤이라고 설명했다.

 

최승희의 <아리랑의 선율> (출처: 1937년 2월19일, <조선일보> 석간2면)

 

1938220일에 개최된 뉴욕 길드 극장 공연에서도 <아리랑>이 상연됐다. 1938221일의 <뉴욕타임스>222일의 <도쿄 아사히신문(2)>은 최승희가 조선무용 <반도의 방랑자>, <아리랑 이야기(アリラン物語)>, <시골 처녀와 기차>가 호평을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뉴욕 공연 레퍼토리에 <아리랑>이 포함된 사실은 조선에서 발행되던 223일의 조선어 신문 <동아일보><조선일보>, <매일신보>는 물론 일본어 신문 <경성일보><조선신문>도 일제히 보도했다.

 

<아리랑 이야기(アリラン物語)>가 초연된 것은 1936922-24일에 개최된 최승희의 도쿄 제3회 공연이었다. 이 작품은 1937년에 진행된 일본, 조선, 만주에서의 도구 고별 공연에서도 지속적으로 상연되었다. 193729일 자 <만슈니치니치신문(7)>219일의 <조선일보(7)><아리랑의 선율(アリランの旋律)>을 보도했고, 1937927-29일에 단행된 도쿄극장 공연의 프로그램에도 <아리랑에 부쳐(アリランに寄與)>가 수록되어 있었다.

 

최승희의 <아리랑의 선율>. (출처: <경성일보>, 1937년 2월19일, 2면)

 

그런데 <아리랑>의 초연은 그보다 앞선다. 1935 10 22일 도쿄의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공연에서 최승희는 <아리랑>을 발표했지만, 그때는 이름이 달랐다. 당시의 제목은 <세 개의 코리안 멜로디>였다. 이 작품은 3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조곡(組曲)이었는데, 그중 두 번째 작품이 <민요조(民謠調)>였다.  <민요조>의 의상이 1936년에 <아리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의 의상과 완전히 같다. <민요조>의 제목이 <아리랑>으로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193611월의 홋카이도 순회공연에서 최승희는 <민요조>와 함께 아리랑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작품을 2개나 상연한 적이 있다. 1117일 오타루(小樽)의 마츠다케자(松竹座)에서 열린 공연에서 최승희는 11개 연목을 상연했는데, 이중 1번 연목이 <2개의 코리안 멜로디>중의 <민요조>, 3번째 연목이 <아리랑의 선율(アリランの旋律)>, 9번째 연목이 <아리랑 댄스(アリランダンス)>였다.

 

1936년 11월 17일의 오타루 공연에서는 <민요조>와 <아리랑의 선율>과 함께 <아리랑 댄스>가 상연되었다고 보도됐다. (출처: 1936년 11월2일, <오타루신문>, 8면)

 

<민요조>와 <아리랑의 선율>을 나란히 수록한 것은 신문사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이 두 작품은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랑의 선율>과 <아리랑 댄스>는 서로 다른 작품으로 판단된다. 이 공연 이후 <아리랑 댄스>라는 제목은 다시 보이지 않는데, 특히 바로 다음날인 1118-19일에 열린 삿포로(札幌) 공연에서는 1부의 5연목이 <아리랑의 선율>이었지만, 3부의 첫 번째 연목의 제목이 <코리안 댄스(コリアンダンス)>였다. 두 작품 모두 최승희에 의한 독무였고 이는 오타루 공연의 <아리랑 댄스>가 삿포로 공연에서 <코리안 댄스>로 제목이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두 작품이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개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코리안 댄스>1937220-21일의 경성 공연, 313-14일의 다롄(大連) 공연, 1937927-29일의 도쿄 공연까지 상연되었으나 이후 다시 상연되지 않았다. 아마도 최승희는 <경기도 아리랑>과는 다른 선율의 아리랑으로 또 하나의 <아리랑 댄스>를 안무해 공연에 나섰던 것으로 추측된다.

 

최승희의 <아리랑에 부쳐>와 함께 상연된 <코리안 댄스>는 <아리랑 댄스>가 개명된 것이다. (출처: 1937년 9월 27-29일의 최승희의 도쿄극장 공연 프로그램)

 

최승희의 미국 공연에서 상연된 <아리랑>1935년에 제3회 도쿄 공연에서 <민요조>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었고, 이것이 1937년 여러 지역에서 열린 도구(渡歐) 고별 공연에서 <아리랑의 선율>, <아리랑에 부쳐>, <아리랑 이야기> 등의 이름으로 상연되다가, 1938년의 미주 순회공연에서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뉴욕에서 발표되었음을 알 수 있다. (jc, 2025/11/30; 2026/3/31)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