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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935다카라즈카

[다카라즈카1935공연] 15. 다카라즈카의 야외무용

최승희가 스승 이시이 바쿠의 오락무용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레뷰에 대해서만은 스승과 달리 열린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은, 그녀가 자주 야외무용을 시도했던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시이 바쿠도 극장을 벗어나 야외무용을 시도한 적은 있었다. 이시이 무용단은 19267월에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공연을 진행한 바 있고, 홋카이도 순회공연 도중이었던 그해 8월에는 삿포로의 나카지마공원의 야외무대에서 공연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시이 바쿠의 야외무용은 극장에서의 무용공연을 야외무대로 옮겼다는 점에서 그다지 큰 차이점이 없었다.

 

 

그러나 최승희의 야외무용은 무용공연이라기보다는 야외무용 사진촬영회로 진행되곤 했다. 즉 최승희가 야외에서 미리 선곡한 작품을 상연하는 동안 유료 입장한 아마추어 및 프로 사진가들이 최승희의 무용동작을 자유롭게 사진 찍는 것이었다.

 

최초의 최승희 야외무용 촬영회는 19348월에 카마쿠라 유이가하마(鎌倉由比)에서 이뤄졌다. 1회 도쿄발표회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최승희는 토요우(東洋)사진공업사가 주최한 사진 촬영회에 출연했다. 이 촬영회에서 촬영된 최승희의 모습 중에서 쿠와바라 키네오(桑原甲子雄)의 작품이 2등으로 입선된 후, 그의 사진집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두 번째 야외무용 촬영회는 1935106일 도쿄 인근의 오쿠타마(奧多摩) 계곡에서 진행됐다. 라이카 카메라사가 주최한 이 촬영회에는 홋카이도에서 큐슈에 이르는 일본 전역에서 신청자를 받아 추첨으로 280명을 선정해 진행됐는데, 유일한 조건은 라이카 카메라를 소지한 촬영자만 이 촬영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촬영회의 모습은 <사진신보(寫眞新報)> 193511월호에 10장이 수록되어 있고, 19365월호에는 25명의 입선자 명단이 실렸다.

 

 

19351110일 다카라즈카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촬영회가 3번째로 확인된 최승희의 야외무용 촬영회였다. 전날의 대극장 공연이후 연달아 열린 촬영회에는 12백명이 입장해 이전의 유이가하마와 오쿠타마 촬영회에 비해 참여자 규모가 최고였다.

 

다카라즈카 야외무용 촬영대회 입장권의 가격이 1엔이었는데, 이는 전날의 대극장 공연 일반 입장권(50)보다 2배나 비싼 가격이었다. 따라서 야외무용 촬영대회의 입장료 수입은 최고 12백원으로, 전날 대극장(35백명) 공연의 입장료 수입 940엔을 능가했다. 대극장 공연의 입장료는 특별석 3백석은 1, 일반석 32백석은 50전이었다.

 

이 야외무용 촬영대회는 1110일의 오전10시와 오후1시로 2회에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12백명의 입장객이 2회 촬영회를 합친 숫자인지, 혹은 각각 12백명이 입장했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일 오전10시와 오후1시의 입장객이 각각 12백명이었다면, 최승희 촬영회의 입장객은 최대 24백명이며 입장료 수입은 24백원으로 추산되는 규모이다.

 

 

1935년 다카라즈카 공연수입(940)과 야외공연 촬영회 수입(12백엔)의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2024)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의 입장료는 특별석(S)88백엔, 일반A석이 55백엔, 일반B석이 35백엔이다. 1935년의 일반석 입장료 50전이 2024년에 일반석 입장료 평균 45백엔, 특별석 입장료 1엔이 오늘날의 88백엔이 된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최승희 공연과 야외공연 촬영회 입장료 수입의 합계 2140엔은 오늘날의 약 2천만엔, 한국 원화로는 약 2억원에 해당한다.

 

입장료 수입이 당시의 관행대로 극장이 60%, 공연자가 40%의 비율로 배분됐다면, 최승희의 공연수익은 약 8백만엔, 원화로 8천만원에 달해, 2023년 한국의 3백인 이상 대기업의 정규직 대졸자 초임 연봉 5천만원의 1.6배에 달하는 수익이다.

 

 

최승희가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은 레뷰에 대한 긍정적인 미학적 이유라기보다는 이틀 동안 8천만원의 수익이 보장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jc, 2025/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