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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2025길-홍범도

[유준2025홍범도] 12. 범도의 눈물(2024)

유준 화백의 올해 전시회는 개인전인 <>전과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전기 수묵화집 출판기념과 병행된 <홍범도>전이 동시에 열렸습니다.

 

두 전시회가 모두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렸는데, <>전은 큰 전시실, <홍범도>전은 맞은 편의 소전시실에서 열렸는데, 기간도 117일부터 25일까지의 3주일로 같았습니다.

 

 

<홍범도>전에 전시된 것이 30여개 작품인데, 모두 홍범도 수묵전기에 수록된 것입니다. 화집에는 더 많은 그림이 실렸지만 전시공간이 모자라 모두 전시되지는 못했다는군요. 따라서 수묵전기를 보면 <홍범도>전의 완전판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 제 마음을 가장 울린 것은 <범도의 눈물(2024)> 두 점입니다. 감동은 감동이지만, 기쁨과 환희의 감동이라기보다는 애잔함과 분노가 곁들여진 감동이죠.

 

 

<범도의 눈물> 한 점은 일본군에 의해 간도 대학살로 희생된 동포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고, 다른 한 점은 홍범도 장군이 죽음의 침상에서 마지막으로 흘리던 눈물이죠.

 

경신참변이라고도 불리는 간도대학살은 192010월부터 19214월까지 일본군이 만주에 거주하던 조선인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삼일운동 이후 국내외에 독립군과 지휘관 양성기관이 설립되고 무장한 독립군 부대가 편성되면서, 이들은 1920(경신년) 조선-만주국경을 넘어 국내침공을 감행,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을 타격했습니다.

 

 

19206월의 봉오동 전투와 10월의 청산리 전투로 큰 타격을 입은 일본군은 만주에 주둔하던 일제 관동군과 조선에 주둔했던 일제 조선군 3개 사단을 동원,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작전을 전개하던 중, 조선인 부락을 무차별로 불태우고 양민을 학살했습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의 패전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이지요.

 

영화 <암살(2015)>에서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어머님(=유모)은 다행히도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바로 간도대학살을 가리킵니다. ‘다행하지 못하게 사망한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집에 지른 불에 타 죽거나 총검에 찔려 잔인하게 사망했습니다.

 

 

두 전투에서 3천명이 넘는 일본군을 토벌하는 공을 세우고도, 그 보복으로 민간인 동포들이 학살당한 것을 목격한 홍범도 장군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범도의 눈물>은 죽음을 맞이하는 침상에서의 모습입니다. 간도참변 이후 자유시 참변을 겪은 홍범도 장군은 1922년 코민테른 국제대회에 혁명가로 참가하고, 1927년에는 소련의 볼셰비키당에 입당하는 등, 조선의 독립을 위해 소련의 지원을 얻기 위해 활동했으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키질로르다에 정착한 홍범도 장군은 집단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연해주에서 옮겨온 <고려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중, 19431025, 향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 23, 강제이주를 당한지 6년만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두면 자신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가 살았던 파란만장한 인생의 국면들 중에서 어떤 것이 그에게 마지막 눈물을 흘리게 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조실부모했던 어린 시절의 고생이었을까요?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 관군에서 받았던 폭력과 부당대우였을까요? 법계를 깨뜨릴 만큼 사랑했던 아내와 아들까지 일본군에게 잃었던 상실감이었을까요? 일본군을 무찌르고도 동포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동족끼리 총질을 해야 했던 자유시참변 때의 무기력 때문이었을까요?

 

혹은, 입당하기까지 소련 정부의 정책을 따랐지만, 결국 그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던 억울함이었을까요? 협동농장 농부와 고려극장 문지기 시절의 의기소침이었을까요? 어쩌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이 모든 장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범도의 눈물>은 두 번 다 한 줄기 눈물입니다. 이런 식의 눈물은 북받쳐 올라오는 것은 아니죠. 자신도 모르게 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입니다.

 

 

어쩌면 홍범도 장군은, 유준 화백이 묘사한대로, 이렇게 평생에 딱 두 번 울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jc, 20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