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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2025길

[유준2025길] 11. 가을동화(2024)

앞글에서 유준 화백이 물을 잘 그리는 수묵화가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가을동화(2024)>입니다. 갯배가 물과 만나는 수면을 찬찬히 보면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 가서 보면 그냥 군데군데 아무렇게나 먹이 번져 있고, 그 위에 꼬불꼬불하게 붓질 몇 번씩 한 것처럼 보이지만, 서너 걸음 떨어져서 보면 갯배머리가 물을 만나 일으키는 소용돌이와 함께 퍼져가는 물결이 참 생생하게 보입니다.

 

 

유준 화백의 <가을동화>를 보면서 모네의 <라 그루누이에르(La Grenouillère, 1869)>도 기억에 소환되더군요. 라 그루누이에르는 개구리 연못이라는 뜻인데, 모네와 르노아르가 같은 시기에 개구리 연못의 작은 섬을 그렸습니다. 버드나무가 딱 한그루 심겨져 있고 예닐곱 명이 들어서면 꽉차버리는 이 쬐끄만 섬을 당시 파리 사람들은 <화분(Pot de Fluers)>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두 화가의 <라 그루누이에르>는 거의 같은 구성이지만, 르노아르가 <화분> 위의 사람들을 묘사하는데 치중했다면, 모네는 <화분>을 둘러싼 개구리 연못의 물결에 공을 들였습니다. 저는 이 그림이 하도 좋아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이 그림이 있는 작은 방에만 있다가 온 적도 있습니다. (르노아르의 작품은 유럽에 있다고 하더군요. 스톡홀름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모네의 <라 그루누이에르>는 화폭의 아랫부분 절반 이상이 물결이라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냥 진하거나 연한 푸른 물감들이 뭉툭하게 죽죽 그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서너 걸음 떨어져서 보면 물결과 거기에 비친 버드나무의 그림자가 얼마나 생생한지 모릅니다.

 

유준 화백의 <가을동화>를 보면서 모네의 <라 그루누이에르>가 떠 오른 것은 갯배가 <화분> 같아 보였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네의 화분에는 예닐곱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지만, 유준 화백의 갯배에는 여성이 혼잡니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겠지요?

 

 

저는 <가을동화>가 방송될 때 보지 못했고, 나중에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장면을 보고 떠오르는 상념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장면이 사뭇 안타까운 장면이라더군요. 오래 헤어졌던 연인이 만나는데, 갯배가 스쳐 지나가면서 남자만 알아보고 여자는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버리는 장면이라고...

 

속초 아바이 마을에 들렀을 때도 갯배 선착장 근처에 여기저기 조형물도 보았고, 실제로 500원 내고 이 갯배를 타본 적도 있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5-60미터나 될까말까한 수로를 건너는 갯배가 뭐 그리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게 느껴질 수는 없죠.

 

 

하지만 그 드라마를 봤건 못봤건, 유준 화백의 <가을동화>를 본다면, 끌어당겨지는 갯배의 뱃전을 치면서 소용돌이와 함께 온갖 변화를 일으키는 물결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모네는 라 그루누이에르의 물결을 그리느라고 흰색에서 암청에 이르는 온갖 색깔을 구사했지만, 유준 화백은 먹의 농담으로만 그 생생한 표현을 만들어냈다는 거 아닙니까?

 

 

제가 유준 화백을 수묵의 인상파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인데, 그건 <가을동화> 갯배의 물결을, 가까이서 한 번, 그리고 멀리서 다시 한 번 보시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jc, 202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