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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2025길-홍범도

[유준2025길] 10. 겨울(2024)과 겨울2(2024)

 

유준 화백의 2025<>전에 출품된 작품 <(2023)>을 이야기하면서 아마다블람과 흰수염고래 사이에는 7천만년의 시간 차가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죠.

 

7천만년이라는 시간은 상상하는 것만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인류가 수렵채취 생활을 청산하고 농사를 시작했다는 신석기시대가 불과’ 7천년 전인데, 그 만 배의 시간에 해당하는 7년이라니까요.

 

<(2022)>은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같은 화폭에 서로 다른 시간대를 공존시키는 게 유준 화백의 취미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약간의 여행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도, 그 장면을 비교적 온전히 이해하려면 몇십 년이나 몇백 년의 시간 여행이 필요한 것이지요.

 

 

<겨울(2024)><겨울2(2024)>이 그런 경우입니다. <겨울>에서는 고양이가 성벽 위에 앉아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겨울2>에서는 젊은 여성이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데 화폭의 오른편 절반이 성벽이죠. 서울의 한양 성벽이라면 기본적으로 몇백 년 전의 유적이죠?

 

<겨울2>는 삼선동의 장수마을 풍경입니다. 한성 도성의 일부가 남은 것인데, 이 도성이 처음 축조된 것이 1395년입니다. 임진왜란(1592)으로 성곽이 무너진 것을 광해군이 복원했지만,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굴복시킨 청나라는 한양도성의 복원 자체를 금지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무너진 성벽이 방치되다가 숙종(1704-1711)과 영조(1743) 때에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1910) 이후 한양도성의 대부분이 철거됐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남아있는 성벽은 이르면 1395년에 축성된 것이거나, 늦어도 1743년에 복원되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겨울2>의 오른쪽 절반에 묘사된 저 한양도성의 나이는 적어도 280, 많으면 7백살입니다.

 

7백년된 성벽이 이제 스물이 갓 넘었을까 말까인 여성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게 퍽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 마을이 장수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있네요. 마을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것은 2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 마을 앞길의 이름이 장수길이라고 해서 도시 정리를 하면서 마을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이죠.

 

실제로 장수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검증되지도 않았습니다만, 사람이 장수해야 1백살을 넘기기 어렵잖습니까? 그런데 성벽은 적어도 그 3, 많으면 7배나 장수하고 있습니다.

 

 

<겨울>의 성벽도 마찬가지겠지요? 저 성벽이 신축되거나 마지막으로 보수되었을 때는 3백년 전이나 7백년 전이지만, 유준 화백이 본 성벽 위의 고양이는 10년이나 살았을까요?

 

7백년 성벽과 스무살 남짓의 여성, 그리고 3백년 도성과 열 살도 안되었을 고양이가 나란히 병치된 모습에 특이한 느낌을 받는 관람객도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무심한 어깨를 가진 여성의 뒷태와 스텔스 기능이 탑재된 검은 고양이와 함께 수백년의 성벽도 일상화적으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들 사이의 세월의 간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면, 호기심과 함께 관심과 사유가 발동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는 점에서 <겨울><겨울2>계절에 대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숱한 계절이 중첩되면서 흐른 시간과 시간의 대비에 대한 이야기일 것... 이라는 게 제 느낌입니다. (jc, 202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