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노랑색을 기가 막히게 잘 썼죠. 아를르의 카페나 해바라기, 심지어 몇몇 자화상에서도 노랑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게 평론가들의 중평이더군요.)
게다가 별밤에서 보이는 밤 하늘의 별빛과 물에 비친 가스등 불빛은 경이롭죠. 슬픔이나 외로움 조차도 따뜻해서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모네는 녹색과 흰색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전자는 수련, 후자는 루앙 성당 연작을 하도 많이 봐서 제게 그런 인상과 기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유준 화백은 파란색이죠. 그는 수묵 작가니까 색채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화가지만, 그의 담채 중에서는 항상 파란색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편견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올해의 <길>전에도 수묵담채 작품이 꽤 나왔는데 역시 파란색이 대종이네요. 뭐, 유준 화백은 원래 물을 잘 그리는데다가, 이번 전시회에는 밤과 눈이 배경이 많으니까 파란색이 많겠다고 짐작할 수는 있는데, 파란색을 잘 써도 너무 잘 쓴것 같지 않나요?
물론 유준 화백의 푸른색도 다 같은 게 아닙니다. 고흐의 노란색이 다 같은 게 아니고, 모네의 흰색도 천차만별이듯이 말이죠.
유준 화백의 파란색은 물일 때도 있고, 하늘일 때도 있고, 눈일 때도 있지만 색의 농담과 붓질 스트록에 따라 느낌과 효과는 한 작품 안에서도 천차만별이죠.
사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면, 모네나 고흐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랑이나 흰색에 변화를 주는 데에 많은 옵션이 있었습니다. 노랑과 흰색에다가 팔레트에 짜낼 수 있는 모든 색깔을 섞을 수 있기 때문이죠.
노랑에 빨강이나 그린을 섞어도 되고, 흰색에 갈색이나 노랑을 섞어서 무한한 변화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거기다가 테라핀을 얼마나 떨어뜨리느냐에 따라서 농담을 조절할 수도 있었겠고요.
그런데 유준 화백의 파랑은 거기다 검은 먹을 얼마나 섞느냐와 물을 얼마나 타느냐의 딱 두 가지 방법으로 모네나 고흐와 마찬가지로 그 무한한 파란색의 변화를 이뤄냅니다. 수묵화의 제한인 것 같으면서도, 그 제한을 수묵화의 특징으로 극복해버리는 것이죠.
그 결과가 <밤의 침묵(2024)>의 눈, <꿈(2025)>의 밤하늘, <가을에는(2024)>에서는 가을 바다, 그리고 <겨울행(2025)>에서는 겨울 하늘과 눈 색깔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같은 색깔이거나, 같은 느낌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유준 화백의 수묵담채야말로 “묵의 침묵과 물의 사유”가 빚어내는 “색의 자유”인 것이나 아닌지... (jc, 20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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