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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뒷면에는 앞면의 비문 <월조남조>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추도비를 세운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월조남지, 철새는 고향을 잊지 않고 머나먼 조국의 방향으로 뻗은 가지에 둥지를 만든다고 합니다.
“1914년부터 약 15년간 진행된 <고베시 수도터널공사> 중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도 3명의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센가리 수원지에서 고베시까지 깨끗한 물을 보내기 위한 어려운 공사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옛 국철 후쿠치야마선 부설 후, 이곳 무코강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범람과 토석류로부터 철도를 지키기 위한 개수공사 중, 1929년 3월26일에 두 명의 조선반도 출신자가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역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도와 철도 건설현장에서 희생된 다섯 분을 애도하면서, 사고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추모비를 건립합니다. 2020년 3월26일.”
비문에서 밝힌 <고베시 수도터널공사>과 <옛국철 후쿠치야마선 개수공사>에 대해서는 정홍영 선생의 저서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요약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추도비의 건립 목적에 주목해 보자.
위의 인용문 마지막 문장에 따르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희생된 다섯 분을 애도”하고 “사고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이다. 희생자들이 왜 애도 받는 것일까? 지역생활에 중요한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중에 순직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왜 기억하고 전하려는 것일까? 그런 사고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목적으로 추도비를 세웠다면 나는 그것이 성숙한 근대적 시민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때로 <추도비>와 <위령비>는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어원적으로는 그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위령>이 중세적, 종교적 개념이라면 <추도>는 근대적, 시민사회적 개념이다. 사고나 질병,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모두 억울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들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는 것은 사실 종교적 영역이다. 굳이 영혼이나 넋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다. 그것이 현대적 시민사회의 ‘추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위령비>라는 말에는 ‘억울한 넋’이 ‘악령’이 되어 자행할지도 모를 ‘해악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포함된다. 이는 과거 한국에서도 낯익은 개념이다. 서낭당에 색색의 리본을 매는 일이나, 마을 어귀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세웠던 것이 그런 것이다. 이는 종교적 측면에서 이해할 만한 관습이고, 그렇게 남겨진 비석이나 유물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 주술의 관념이 포함된다. 이는 근대적 사고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술 개념이나 종교적인 관행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개인들의 그러한 신앙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근대적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좀 더 객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회적 의미를 갖는 기념물이라면 중세적, 종교적 의미의 <위령비>보다는 근대적, 시민사회적 의미의 <추도비>가 더 어울리는 말이다.
나는 일찍이 정세화 선생과 곤도 도미오 선생에게 이 추도비의 ‘정식 이름’이 무엇인가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월조남지비>, <위령비>, <추모비>, <추도비> 등이 후보로 올랐었다. 그중에서 곤도 선생과 정세화 선생은 <추도비>가 가장 적절하겠다는 대답을 주셨고, 그 후로 우리는 이 추도비를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라는 부르고 있다.
우리는 때로 <위령비>라고 쓰고도 <추도비>로 이해한다. 그것은 ‘위령’이라는 말을 비유적, 상징적인 뜻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자구적인 해석에 매달릴 필요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의 시민사회에서라면 ‘추도’라는 말이 정확하고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소모적인 문제의 소지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jc, 202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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