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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도미오 선생은 <무쿠게통신>에 기고한 <정홍영상과의 일>에서 1983년 가을부터 자신은 정홍영 선생의 금붕어 똥이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다카라즈카와 효고, 더 나아가 일본 전역의 재일조선인 관계 조사연구 활동의 단짝이 된 것이다.
정홍영 선생은 생전에, 후쿠치야마선 부설공사에서 사망한 일본인 노동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같은 철도의 개수공사에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추모비가 없다는 것을 자주 개탄했다. 곤도 선생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에 열과 성을 쏟은 것은 그같은 정홍영 선생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편, 곤도 선생은 김예곤 선생과도 가깝게 활동했다. 2013년 <다카라즈카시 외국인시민문화교류협회>에 가입하면서 김예곤 선생과 함께 일했고, 2017년부터는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을 위해 결성된 <목련회>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로부터 3년 후 두 사람은 다른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면서 결국 추도비를 세웠다.
즉 곤도 선생은 정홍영, 김예곤 선생과 각각 협력하면서 재일 조선인 관련 조사연구와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다. 그렇다면 정홍영 선생과 김예곤 선생은 서로 어떤 관계였을까? 이 짧은 글에서 두 사람의 인적사항과 교우관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의 문제에 국한한다면, 정홍영 선생의 생전이나 사후에도 두 사람은 매우 긴밀한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나이가 비슷한 연배이다. 정홍영 선생이 1929년생이고, 김예곤 선생은 1933년생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총련에 몸담아 활동했다. 정홍영 선생은 오랫동안 총련 다카라즈카 지부의 위원장(1965-1976)으로 근무했고, 김예곤 선생은 조선중,고,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동창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두 사람은 모두 학술 및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다. 정홍영 선생은 주로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천착했고, 김예곤 선생은 다카라즈카 지역의 외국인시민 운동을 전개하셨다. 이같은 학술 및 사회운동은 모두 재일 조선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개선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차이점도 있었다. 정홍영 선생은 경상남도 상주에서 태어나 7세에 일본에 건너온 재일1세였지만, 김예곤 선생은 효고현 카와베군에서 태어난 재일2세였다.
정홍영 선생은 어린 시절 다카라즈카의 일본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에 해방을 맞은 후에는 간사이의 명문 간칸도리츠(関関同立)의 하나인 리츠메이칸(立命館大学)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김예곤 선생은 13세에 해방을 맞을 때까지 일본 소학교를 다녔으나,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은 때마침 설립된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을 받았다. 그의 전공은 어문학이었다.
두 사람의 활동 영역과 시기도 달랐다. 정홍영 선생은 젊은 시절에는 총련의 다카라즈카 지역 위원장으로 사회 및 정치 활동을 했고, 위원장을 사임한 후에는 역사 분야의 학술운동에 투신했다. 김예곤 선생은 젊은 시절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학술 운동을 했고, 1970년에 다카라즈카로 돌아온 후에는 기업경영에 전념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했다.
이 같은 몇 가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세우는 일에 협력한 셈이다. 정홍영 선생은 조사연구를 통해 순직자들의 존재를 드러냈고, 그들의 죽음이 다카라즈카 시민사회와 재일 조선인 공동체에 던지는 의미를 밝혔다. 김예곤 선생은 정홍영 선생의 뜻을 받들어 석재를 마련하고, 글씨를 쓰고, 추도비가 적절한 곳에 세워지도록 부지를 마련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즉,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가 세워진 것은 정홍영 선생의 선구적인 노력뿐 아니라 김예곤 선생의 실질적인 활동, 그리고 이 두 사람과 모두 함께 일하면서 결국 일이 이루어지도록 이끈 곤도 도미오 선생의 오래고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jc, 20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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