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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추도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8. <월조남지>의 조선인 추도비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9에 있습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주인공들에 대한 조사의 출발점은 당연히 추도비이다. 리서치의 목표가 그 주인공들의 한반도내 연고지와 친인척을 찾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세화 선생께서 보내주신 새로운 추도비 사진에는 고베 수도공사와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5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름이 또렷이 보였다. 추도비 전면 하단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은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윤길문(尹吉文, 21), 오이근(吳伊根, 25), 수도공사에서 사망한 김병순(金炳順, 30), 남익삼(南益三, 37), 장장수(張長守, 27)씨이다.

 

다섯 사람의 이름 위에는 <월조남지(越鳥南枝)>라는 한자가 큰 글씨의 세로쓰기로 새겨져 있다. “월나라 새, 남쪽 가지라는 뜻이다. 이는 중국 남조(南朝) 양나라대(梁代, 502-557)에 편찬된 고대시가집 <문선(文選)> 29권에 수록된 오언시(五言詩) 19수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앞면에는 효고현 지역의 주요 2개 공사에서 사망한 5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이들이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한 심정을 대변하는 <월조남조>의 글귀가 행서체로 새겨져 있다.

 

다른 시들처럼 여기에도 제목이 따로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첫 행 <가고가다 또 가고가다(行行重行行)>가 제목으로 불린다. 5 16행으로 된 이 시의 7-8번째 행이 북방의 말은 북풍에 몸을 기대고(胡馬依北風)/ 월나라 새는 남쪽가지에 둥지를 튼다(越鳥巢南枝)”인데, 뒷부분에서 둥지 소()’자를 빼내어서 월조남지라는 4자성어로 만든 것이다.

 

서기 6세기의 책에 실린 시지만 그 단순한 형식이나 소박한 내용으로 보아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중국의 진짜 오래된 옛 노래이다. 적어도 25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가사인 것이다.

 

이 노래는 이별 노래이다. “가고 가고 또 가고 가다가/ 당신과 생이별을 했네요/ 떨어진 거리가 만 리가 넘어서/ 각기 하늘 끝으로 멀어졌어요/ 갈 길이 험하고 멀어서/ 만날 날은 언제일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 북방의 말 월나라 새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노래는 두 절로 나눌 수 있는데, 8행까지의 1절은 고향을 떠난 자식의 노래로 보인다. 북방의 말이 북풍에 몸을 기대고, 월나라 새가 남쪽 가지에 둥지를 틀듯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월나라 새가 남쪽가지에 둥지를 짓는다>는 싯귀는 <북방의 말이 북풍에 몸을 의지한다>는 구절과 함께 멀리 떨어진 타향에서 정든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도 향수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싯귀로 애창된다.

 

2절은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노래이다. “서로 헤어진 날이 이미 길고/ 허리띠가 날로 느슨해 지는구나/ 뜬 구름은 햇빛을 가리고/ 떠난 사람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지/ 너를 생각하느라 늙어만 가는데/ 세월은 홀연히 저물어가는구나.” 멀리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자식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얼마나 이별이 길고 애가 타면 허리띠가 느슨해질 만큼 살이 빠졌겠는가.

 

2절의 마지막 2행은 오늘날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부모의 걱정이다. “아서라, 더 말하지 않으마/ 부디 밥이나 잘 챙겨 먹어라는 체념 섞인 부모의 자식 걱정은 25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난징(南京)에서나 다카라즈카(寶塚)에서나 서울에서나 똑같은 것이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앞면에 쓰인 <월조남지>의 글씨는 다카라즈카 출신의 어문학자이자 석재회사 경영자인 김례곤 선생이 쓴 것이다.

 

<월조남지>의 비문을 처음 보았을 때 의문이 들었다. 일본에서 사망한 조선인을 왜 중국시로 기렸을까? 하지만 중국 양무제의 맏아들 소명태자(昭明太子, 501-531)가 편찬한 <문선>은 한국에서는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즐겨 암송되었다는 내용이 <구당서(舊唐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있다. 일본에서도 나라시대의 <일본서기(日本書紀, 680-720)> <만요슈(万葉集, 7-8세기)>에서 <문선>의 영향이 발견된다고 한다. 비록 중국에서 시작된 노래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서도 매우 익숙한 시가였다는 말이다.

 

나는 이 추도비에 멋들어진 행서체로 <월조남지>를 쓴 사람이 궁금했다. <문선> 고시를 아는 한문학자이거나 힘 있고 우아한 글씨체로 보아 전문 서예가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글씨를 쓴 김예곤(金禮坤) 선생이 일본어-조선어 사전까지 편찬한 어문학자이자, 쇄석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했던 사업가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많이 놀랐다. (2021/4/20)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9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