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는 미국 순회공연 중에 “일본인 무용가”로 소개됐다. 일제 당국이 최승희를 일본의 문화사절로 이용하려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대학살이 미국민에게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반일 감정이 일었고, 일제불매운동으로 번졌기 때문이었다.
조선 출신의 최승희가 미국에서 조선무용을 공연하기 시작했지만, 그녀가 “일본인 무용가”로 소개되는 한 불매운동 대상이었다. 결국 최승희의 미국 공연은 서부에서 2회, 동부에서 2회 이뤄진 후,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고, 흥행사와의 순회공연 계약도 파기됐었다.
파리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최승희가 1938년 12월24일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일본인 무용가”라는 말보다 “극동의 무용가”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됐다. 1월15일 일본 대사관이 주최한 리셉션 이후에는 “일본인 무용가”라는 말이 늘어났지만, 1월31일의 살플레옐 공연 이후에는 “조선인 무용가”로 정착되었다.
마르세유에서는 어땠을까? 최승희의 마르세유 도착을 보도한 4개 일간신문들은 “극동의 무용가,” “일본인 무용가,” “조선인 무용가”라는 말을 섞어서 사용했다. 우선 2월28일자 <르쁘띠 마르세예(3면)>는 최승희를 “극동의 무용가(danseuse d'Extreme-Orient)로 소개했고, 그녀의 고국(son pays natal)을 조선(la Corée)이라고 명시했다.
같은 신문 5면에 실린 최승희의 공연 광고문에도 마찬가지였다. 최승희의 오페라 뮈니시팔 공연이 3월1일 수요일 오후9시에 열린다면서 최승희를 “극동의 위대한 무용가”라고 소개했고, 그녀의 작품을 “조선무용(danses coréennes)”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같은 면 상단에 게재된 “오늘의 공연(aujourd'hui)” 안내 난에는 최승희를 “일본인 무용가(danseuse japonaise)”로 소개했다. 한 신문에 세 가지 표현이 모두 사용된 것이다.
같은 날짜의 <르 쁘띠 프로방살(4면)>은 마실랴 살롱의 리셉션을 보도하면서 최승희를 “조선인 무용가(danseuse coréenne)”라고 불렀고, 같은 면의 공연 광고에서는 그녀를 “극동의 무용가,” 그녀의 작품을 “조선무용(danses coréennes)”이라고 명시했다.
<르 세마포르 드 마르세유(5면)>는 사진 기사의 제목부터 “저명한 조선인 무용가가 마르세유에(la célebre danseuse coréenne à Marseille)”로 달았고, 본문의 사진설명에도 최승희를 “조선인 무용가”라고 지칭했다.
최승희에 대한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한 <르 라디칼 드 마르세유(3면)>은 최승희를 “극동의 가장 위대한 무용가(la plus grande danseuse de l'Extrême-Orient)”이자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la plus belle fille de Corée)”이라고 불렀다.
이 기사는 또 최승희가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유서 깊은 가문에 태어났”으며, 지금 “조선무용의 대사(Ambassadrice de la danse coréenne)”의 역할을 수행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최승희가 출연했던 자전적 무용영화 <반도의 무희>의 제목도 <조선의 무희(Danseuse de Corée)>라고 번역했다.
파리에서 데뷔할 때에 비해 마르세유의 언론은 최승희를 조선인 무용가로 인식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부분적으로 극동의 무용가, 일본인 무용가로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를 조선인 무용가라고 부르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것은 파리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마르세유의 언론은 파리의 언론에 민감했고, 실제로 파리의 언론에 실렸던 비평문을 마르세유의 신문에 전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마르세유의 언론인들이 조선과 일본의 관계, 특히 조선인들이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최승희에 대한 장문의 인터뷰 기사까지 쓴 <르 라디칼>의 외젠 에스카비 기자가 최승희가 입었던 한복을 “키모노”라고 불렀던 것이 그 한 가지 증거일 것이다. (jc, 20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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