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마르세유 공연을 조사하면서 의외였던 것은 공연의 일정과 장소였다. 최승희의 유럽공연 일정 전반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최승희가 오빠 최승일에게 보낸 서신인데, 이 편지의 일부가 <여성> 1939년 7월호에 게재되었다.
“2월6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제1회 무용발표회를 하였는데, ... 2월26일에는 남프랑스에 세계적 명승지인 칸의 뮤니시팔 씨어터에서 무용발표회를 하였고, 3월1일에는 마르세유의 공연 ...
“3월 중순부터 스위스의 쥬네부, 로잔의 공연, (3)월말에는 ... 밀라노, 플로렌스, 로마의 공연 ... 4월부터 네덜란드의 5개소의 공연, (4)월말에는 벨기에의 제2회 공연과 안트베르펜 등지의 벨기에의 3도시에서 무용공연을 하였습니다. ...
“독일 공연은 아직 날짜가 미정이오나 아마도 5월 중순쯤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여러나라와 영국 방문 공연은 그 다음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승희가 이 편지를 쓴 시기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편지 내용에 따르면 “(4)월말에는 ... 벨기에 3도시에서 무용공연을 하였”고 “독일 공연은 ... 아마도 5월 중순쯤이리라고 생각”한다고 쓴 것으로 보아, 이 편지는 4월말에 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필자가 유럽 각지의 도서관의 신문자료와 기록보관소를 조사한 결과 벨기에 안트베르펜 공연은 4월말이 아니라 5월11일이었고, 독일의 첫 공연은 5월 중순이 아니라 4월2일의 뒤스부르크 공연이었다. 즉 최승희의 서신에 나타난 일정은 실제 공연 일정과 매우 달랐다.
이 편지는 최승희가 유럽 체재 당시에 쓴 것이므로 기억이 이 정도로 뒤죽박죽일 리 없다. 따라서 최승희의 서신에 나타난 일정은 기획안이었고, 이것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일정이 조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이 서신을 보낸 시기는 언제일까?
주목할 것은 브뤼셀, 칸, 마르세유 공연까지는 날짜와 극장이 특정되었지만, 이후의 공연들은 대략의 시기와 공연예정 도시만 언급되었을 뿐 날짜와 극장이 명시되지 않은 점이다.
특히 같은 편지에서 “오늘은 칸, 내일은 마르세유, 이렇게 거의 날마다 공연이 있으니까 첫째 몸이 못 견디어나겠”다는 최승희의 하소연을 참고하면, 칸과 마르세유공연을 마친 후이거나, 혹은 칸 공연을 마치고 마르세유 공연을 앞둔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뒤로도 스위스(3월중순), 이탈리아(3월말), 네덜란드(4월), 벨기에(4월말), 독일(5월중순) 등의 공연 일정이 기획되어 있었으니 몸이 못 견디겠다는 하소연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의문이다. 최승희는 파리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유럽 공연의 거점으로 삼았다. 따라서 파리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공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파리에서 칸(900Km)과 마르세유(780Km)는 멀다 브뤼셀(310Km), 안트베르펜(350Km), 루벤(335Km)은 그보다 훨씬 가깝고, 암스테르담(510Km), 덴하크(475Km), 뒤스부르크(520Km), 로잔(520Km), 주네브(580Km) 등도 가까운 도시들이다. 마르세유보다 먼 도시는 이탈리아의 밀라노(851Km), 플로렌스(1,163Km), 로마(1,422Km)뿐이었다.
1930년대에도 유럽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프랑스에서 먼저 공연한다는 것은 그리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최승희는 파리 첫 살플레옐 공연(1/31) 직후에 벨기에의 브뤼셀 팔레 드 보자르 공연(2/6)을 가진 바 있었다.
따라서 최승희의 1939년 상반기 공연 일정은 파리에서 가까운 곳부터 기획된 것도 아니고, 먼 곳부터 가까운 곳으로 좁혀 들어오는 일정도 아니었다.
즉, 파리와 브뤼셀 공연 다음에 바로 칸과 마르세유 공연의 일정을 잡은 데에는 무언가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최승희와 안막 부부가 마르세유와 칸 공연을 단행하면서 가졌던 그 특별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jc, 2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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