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상반기 최승희의 유럽 공연 일정을 살펴보면서 칸과 마르세유 공연이 특별한 의도로 기획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 중에서 파리에서 아주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도시들인데도 가장 우선적으로 공연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더욱 의문인 것은 칸과 마르세유 공연을 진행한 최승희의 동선이었다. 칸 공연이 1939년 2월26일, 마르세유의 공연이 3월1일이었다. 칸 공연이 마르세유 공연보다 사흘 일렀던 것인데, 이는 파리에서 코트 다쥐르(Côte d'Azur)로 여행하는 일상적인 동선이 아니었다.
파리에서 출발해 마르세유와 칸에서 공연한 후 이탈리아로 갈 계획이라면 마르세유 공연을 먼저 하고나서 칸 공연을 가진 다음 계속 동쪽으로 이동해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것이 순방향이다. 그러나 최승희는 칸 공연을 먼저하고 나서 거꾸로 마르세유로 돌아와 공연한 다음, 다시 칸을 지나 이탈리아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 것이다.
최승희가 어째서 1회로 끝낼 수 있었던 마르세이유-칸 이동을 3회나 반복하도록 동선을 기획한 것일까? 마르세유보다 칸에서 먼저 공연을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도시 규모나 문화적 영향력으로 보아 칸은 마르세유에 비견될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마르세이유는 인구 85만명(2013년 센서스)으로 파리(2백22만명)에 이어 프랑스 제2의 도시이다. 같은 기준으로 칸은 인구가 7만명, 프랑스 66위의 도시이다. 이는 8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1946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칸 인구는 4만6천명, 마르세유 인구는 63만명이었다.
지금은 칸이 세계 굴지의 국제 영화제 개최지이고 세계적인 여름 휴양지로 알려져 있어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영화제도 없었고 남유럽 휴양지로는 칸보다 니스나 몬테카를로가 더 유명했다. 1939년 당시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2의 대도시였지만 칸은 시골 타운이었다. 그런데 왜 최승희는 칸에서 먼저 공연한 것일까?
최승희가 이용했을 <르트랑블루>의 노선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두드러진다. 지금은 파리에서 칸까지 직항 항공편이 있지만, 1930년대 말에는 기차를 타야했다. 파리에서 디종과 리용을 거쳐 마르세유까지 860킬로미터를 남하한 후에 다시 서쪽으로 190킬로미터를 가야 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도시 마르세유에 내려서 먼저 공연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한편 최승희는 3월 중순에 스위스, 3월 말에 이탈리아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조사결과 스위스와 이탈리아 공연은 계획되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최승희는 파리에서 2월22일 라디오 출연, 2월24일 대사관 행사를 마친 후 <르트랑 블루>를 타고 리용과 마르세유 경유, 칸에 도착해 공연하고(2월26일), 다시 마르세이유에 돌아와 공연한 다음(3월1일), 재차 칸을 경유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가야했다.
바로 이 점이 이상한 것이다. 그냥 [파리-> 마르세이유-> 칸-> 스위스/이탈리아]로 간단히 이동할 수 있었을 여정을 [파리-> 마르세이유-> 칸-> 마르세이유-> 칸-> 스위스/이탈리아]로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 같은 동선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공연 일시였다. 최승희의 칸 공연일인 2월26일은 일요일이었고 마르세이유 공연일 3월1일은 수요일이었다. 대도시 마르세이유에서는 평일에, 소도시 칸에서는 주말에 공연한 것이다. 이러한 일정은 상식적이지 않다.
공연 일정을 급박하게 잡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최승희는 유럽에 도착하기 적어도 반년 전인 1938년에 뉴욕에서 흥행사 <국제예술기구>와 미리 유럽 순회공연 계약을 체결했다. <국제예술기구>는 유럽 최대 흥행사의 하나였고, 최승희 같은 정상급 무용가의 공연 일정을 허술하게 잡았을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남유럽 공연 순서를 이렇게 복잡하게 잡은 데에는 주최측, 특히 최승희-안막의 특별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승희와 안막은 무엇 때문에 대도시 마르세이유 공연을 소도시 칸 공연 이후, 그것도 평일에 가졌던 것일까? (jc, 2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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