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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이야기

[마르세유1939공연] 1. 마르세유 공연

최승희는 1939년 유럽순회공연을 시작했다. 131일 파리공연은 살플레옐 극장에서 열렸고, 26일 브뤼셀공연은 팔레드 보자르극장이었다. 둘 다 수용관객 2천명의 대형 극장이었는데 모두 만석이거나 만석에 가까웠다. 전 해의 미국순회공연과는 달리 대성황을 이룬 것이다.

 

 

미국에서나 유럽에서나 최승희의 춤에 차이가 있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흥행 차이가 나타난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미국에 편만했던 반일감정이 유럽에는 거의 없었다. 일본 여권으로 여행해야 했던 최승희는 때로 일본인으로, 그의 공연은 일본공연으로 소개되곤 했다. 일제의 중국 침략과 난징 대학살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반일감정이 팽배했고, 최승희의 공연도 일본공연으로 치부되어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 일본보다는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우려해야 했던 유럽에는 반일감정이 거의 없었던 편이었다.

 

 

둘째는 미국과 유럽은 예술무용과 민족무용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최승희도 언급했지만 미국 관객들은 예술보다는 유흥을 원했다. 클래식음악보다 재즈를 원했고, 예술무용보다는 레뷰라고 불리던 쇼를 좋아했다. 반면 유럽 관객들은 예술무용 애호를 유지했고, 발레 루소와 프랑스 발레와 같은 유럽정통의 고전무용뿐 아니라 아시아와 중남미의 민족무용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에서 최승희의 조선무용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셋째는 효과적인 홍보였다. 미국순회공연은 사전 홍보기간이 거의 없었다. 1938111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최승희는 122일 커뮤니티 플레이하우스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충분한 홍보는커녕 시차 극복에도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9381224일에 파리에 도착한 최승희는 한 달도 더 지난 1939131일에 살플레옐 공연을 열었다. 시차 극복과 현지 적응은 물론 공연 홍보와 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유럽 초기 공연에서 성공을 거둔 최승희는 파리로 돌아와 27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고, 217일에는 살드예나 극장에서 자신이 주연한 무용영화 <대금강산보>를 상영했다.

 

최승희가 파리에서 공연 외적 행사에 자주 초대되었던 것은 살플레옐 공연과 보자르 공연의 성공으로 빠르게 유럽의 유명인사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승희의 흥행사 국제예술기구와 프랑스의 대행사 발말레트가 펼친 효과적인 홍보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승희의 공연 기획, 즉 공연 일정과 섭외와 홍보를 담당한 것은 국제예술기구와 발말레트만이 아니었다. 최승희의 남편 안막이 최승희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승희가 레퍼토리를 정하고 연습에 열중하는 동안, 안막은 흥행사, 대행사와 함께 최승희의 공연 일정을 짜거나 홍보 내용을 결정하곤 했던 것이다.

 

유럽순회공연 기획에 안막이 직접 관여했다는 기록은 발견된 바 없지만, 특정 일정이나 홍보 내용은 최승희나 안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제안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승희가 숙명여학교 출신이라든가, 동아시아에서 6백회의 공연을 소화했다던가, 미국 공연 평가 내용은 최승희나 안막이 흥행사와 대행사에 전달한 내용임에 틀림없었다.

 

 

파리에서 최승희는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외 소통은 안막이 담당했을 것이다. 그는 1929년 와세다 대학 러시아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꿔 졸업했기 때문에 영어 구사가 가능했다. 따라서 최승희의 공연 일정과 여행 동선, 그리고 홍보 내용을 결정할 때 안막의 의사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파리와 브뤼셀공연이 성공한 뒤 최승희는 남프랑스 공연을 단행했다.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 칸(2/26)과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 마르세유(3/1)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글에서는 193931일의 마르세유 공연의 특별한 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안막이 공연 기획에 참여했음에 틀림없다는 전제 아래, 안막과 최승희가 단행했던 마르세유 공연의 명시적 의미와 숨은 의미를 파헤쳐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jc, 2023/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