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선생의 강연이 끝나고 애프터 자리에서 제가 질문드린 것이 있습니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의 수구정부가 아니라, 문재인과 유사한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수 있을까요?
이는 미국의 중국 봉쇄 의지와 능력이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나 능력을 압도할 만큼 강력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다시말해, 한국이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없이, 미국이 이런 방식의 신냉전으로 돌입할 수 있었겠느냐고 물었던 것이지요.
남문희 선생의 대답은 뜻밖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추진해 왔지만, 한국 국민의 반일 감정과 한국 정부의 반일 정책 때문에 번번이 실패해 왔다고 합니다.
전두환 때에 일본의 나카소네와 미국의 레이건이 이를 시도했다가 한국 국민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 덕분에 미국은 70년 숙원을 이룬 셈입니다.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습니다. 미국은 이미 운용 중인 항공모함 기동부대에다가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을 남해와 서해까지 배치할 예정입니다. 그밖에도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동북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비를 증강하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미사일을 사들여 무장할 예정입니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둥펑21 시리즈 미사일에다가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S-400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본토를 타격활 ICBM의 고도화뿐 아니라, 한반도 내에서 사용할 전술핵의 소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반도가 무기고로 변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언제 불붙어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기는 만들어지고, 이동되면, 언젠가는 거기서 사용될 운명이잖습니까? 한반도는 20세기 벽두에 일제의 조선 침공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남문희 선생의 강연을 정리하면서 미드웨이 해전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미군과 일본군의 전력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 운용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레이다 때문입니다. 미군은 일본 항공기의 접근을 미리 탐지할 수 있었지만, 일본군은 육안으로 식별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항공모함 4척을 지휘했던 일본해군 제독 나구모 주이치는 큰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미드웨이 폭격이 미진하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미드웨이 재폭격을 위한 포탄 준비와 항공모함 폭격을 위한 어뢰 준비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 합니다. 그러다가 공격과 수비 양면의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그의 휘하에 있던 항공모함 4척이 모두 격침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항공모함의 전멸은 곧 일본해군과 일본제국의 패배로 귀결됩니다.
남문희 선생은 외교의 일관성을 강조합니다. 지금 한국에는 일관된 외교정책이 없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국내 정치와 국제 외교는 별도로 고려해야 하며, 정파 이익과 상관없이 국익 우선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평화와 한반도 중간자 역할을 강조하다가, 수구 정부가 들어서면 모두 뒤엎고, 냉전체제로 돌아서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한반도는 화약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구모의 우유부단과 갈팡질팡은 일본 국민을 위해서는 그나마 나은 결말로 귀결되었지만, 한반도 주변에 집적된 무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하면, 남한과 북한은 가루가 되고 맙니다.
지난 20년동안 유지해 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과 실행은 윤석열 정부 1년반 만에 완전히 무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의 선거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화약고가 되어 버린 한반도를 다시 평화와 상생 지역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남문희 선생은 동북아의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힘이 국민의 투표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jc, 202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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