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서 많은 질문거리가 떠올랐지만, 내가 손들고 한 질문은 하나였다. 지리멸렬하던 상하이 임시정부가 김구가 국무령(1926)-주석(1927)으로 취임하면서 재건하기 시작했을 때 조선내 연통제를 복구하려는 시도가 있었는가, 였다.
박환 선생은 “뭐든 해보려고 했을 것”이라고는 답변하셨지만, 적어도 문헌으로 나타난 것은 없는 것같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김구 주석은 북중국과 만주의 동포들과 미주 동포들에게 지속적으로 자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던 것을 보면, 국내 연통제 복구는 시도했더라도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1926-1932년 사이의 임시정부 재건과 국내 연락조직 복구 문제를 연결시켜보고 싶었던 것은 “커피전문점 카카듀” 때문이었다. 카카듀는 “조선인이 개업한 최초의 커피전문점”으로 알려져 있다. 1928년 9월1일 지금의 인사동 5거리 인근에 개업해서 약 6개월 동안 영업하다가 문을 닫은 카페였다. 카카듀를 개업한 것은 초기 영화감독 이경손이었는데, 동업자가 있었다. 미스 현이라는 하와이 태생의 재미교포였다.
이런 몇 가지 단편적인 기록에 따르면 카카듀가 커피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관심거리 정도였겠지만, 조금 더 답사와 문헌조사와 추론을 거듭하니, 추가적인 사실이 발굴되었다. (이 조사를 위해 나는 방콕 취재를 다녀오기도 했다.)
경성에서 카카듀를 폐업한 뒤 이경손과 미스 현은 둘 다 상하이로 건너갔다. 미스 현은 이내 미국으로 돌아갔고, 이경손은 임시정부의 문화행사를 돕다가 상하이가 일제에 함락되자 방콕으로 망명했다.
이경손이 카페를 경영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작가와 영화감독으로서 불규칙하고 중구난방으로 생활하던 그가 카페를 경영했다는 것은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장사 재주가 전혀 없던 인물이었다. 수 만원에 달했을 창업 자금이 그에게 있을 수 없었고, 만일 그런 돈이 있었다면 그는 영화를 한편이라도 더 만들었을 것이다.
동업자 미스 현은 더더욱 미스테리였다. 약간의 조사를 통해 미스 현이 하와이 출신의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현순(玄楯, 1880-1968)의 딸이며, 한국 이름은 현미옥(玄美玉, 1903-1956), 미국 이름은 앨리스 현이었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었다.
현미옥은 1903년 하와이에서 출생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 국적자였고, 1907년 이화여학교의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대학과까지 진학했다. 1920년 상하이로 이주해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하던 부친과 합류했다.
1921년 고려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 박헌영, 주세죽 등과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승만이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1921년 1월14일) 그에게 환영 화환을 증정하는 두 처녀 중의 한 명으로 선발되는데, 다른 한 명은 손정도 목사의 딸 손진실이었다.
1922년에는 일본으로 유학, 유학생 정준과 만나 결혼한 후, 경남 거창에서 시댁생활을 하던 중 딸을 출산했으나, 가출과 복귀를 거듭하는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 이화여대 사학과의 정병준 교수는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2015)>라는 저서에서, 이 시기에 현미옥은 일본과 상하이, 블라디보스톡을 오가며 좌익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업무를 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좌익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책이던 현미옥이 1928년 9월 갑자기 경성에 돌아와 영화감독 이경손과 동업으로 카페 <카카듀>를 열었다. 창업 자금도 현미옥이 가지고 왔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면서, 아마도 <카카듀>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지시 아래 국내에서 자금과 정보수집 연락망을 재건하기 위한 거점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김구 주석이 <카카듀> 폐업 3년 후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거사를 기획했던 것으로 보아, <카카듀>는 아마도 자금 모집보다는 정보 수집망을 재건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였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기회가 되면 이 짐작과 추론을 검증하기 위한 리서치를 계속해 보고 싶다. (jc, 202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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