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화요일, 저는 일본 취재를 마쳤고, 대륙학교 17기 동문들은 중국 답사를 마친 후 남문희 선생의 강연을 듣기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동아시아 신냉전>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캠프 데이빗과 보스토치니 회동의 배경과 결과를 설명하는 대단히 실제적인 강연이었습니다.
강의든 논문이든, 강연이든 에세이든, 큰 그림과 세부사항을 동시에 서술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큰 그림과 세부사항을 자주 왔다갔다 해야한다면 이해하기가 더더욱 힘들지요.
남문희 선생의 강연은 그 점에서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사일의 종류와 사거리를 설명하자마자 이를 한미일과 북러중 사이의 동아시아 세력판도 변화를 서술하는 데에 활용했던 것은 실로 설득력의 압권이었습니다.
2시간 반에 걸친 남문희 선생의 강연이 끝난 다음, 저는 무서운 느낌이 들었고, 몸이 오싹하기까지 했습니다. 2023년 이후로, 특히 한미일의 캠프 데이빗 회동과 북러의 보스토치니 회동 이후로, 남북한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미사일 기술의 변화입니다. 남문희 선생의 강연도 시기적으로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2010년 중국의 대항모 미사일 둥펑(东风)-21D가 실전 배치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기체계와 방어전략 사이의 관계에 대한 남문희 선생의 설명을 들으면서 저는 이차대전 당시의 미드웨이 해전이 떠올랐습니다. 1941년 12월7일 항공모함 6척을 포함한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때 일본군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지릅니다. 첫째는,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며, 정당한 명분이 없이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일단 기습공격을 해 놓고서 나중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침략국의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지요.
둘째,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진주만 기습공격에서 미국의 항공모함을 한 척도 파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비행기를 싣고 다니면서 공중에서 적국 함대를 공격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전략무기의 핵심이었습니다.
수만 톤의 배수량과 거대한 함포로 무장한 전함도 항공모함에는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항공모함을 파괴하지 못한 것은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겠다는 일제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한마디로 당시 제해권의 핵심은 항공모함이었다는 뜻입니다.
일제가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두 번째의 시도가 미드웨이 해전입니다. 실패한 진주만 기습 이후 6개월만이었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뜬 작은 섬에 불과했지만, 미드웨이 섬에는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섬 자체가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었던 것이지요.
일제는 이 미드웨이 섬을 점령해서 미해군의 태평양 전개를 가로막고 하와이까지 넘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1942년 6월4-7일)은 일본의 패배로 끝났고 이때부터 일제는 쇠락합니다. 그 뒤로도 전쟁은 2년이나 더 계속됐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한 순간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핵심이 바로 항공모함입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제는 4대의 주력 항공모함을 모두 잃었고, 미국은 참전한 3대의 항공모함 중에서 요크타운 한 척을 침몰 당했을 뿐입니다. 항공모함이 없으면 제해권은 불가능했던 시절입니다.
1940년대의 항공모함이 지금은 미사일입니다. 중국의 미사일 둥펑-21D가 미국의 항공모함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중국을 봉쇄하고 있던 것이 미국의 항공모함들이 무기력해 졌다면, 이는 미국의 중국 봉쇄가 불가능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전전긍긍하면서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지요. (jc, 202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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