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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17. 아오모리 (3) 토오(東奧)연감

아오모리 도서관에서 4회의 공연을 비교적 손쉽게 확인한 것은 두 권의 연감(年鑑) 덕분입니다. 이 연감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신문 조사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을 텐데, 그랬다면 이와테 도서관에서 확인된 193651일 모리오카 공연에 뒤이은 53일의 아오모리 공연을 확인하는 데에 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서 한 분이 1936년과 1937년의 주요 사건들을 기록한 <토오(東奧)연감>을 찾아내셨고, 이 연감의 무용란에 해당 연도의 주요 무용공연들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토오연감>은 아오모리 현에서 발행되는 조간단독의 지방신문 <토오닛포(東奧日報)>가 발행하는 연감입니다.

 

 

1936년의 <토오연감>에는 193653일에 최승희의 아오모리 가부키자 공연, 그해 1122일에도 아오모리 가부키자와 1123일 히로사키의 히로사키자(弘前座)에서 열린 신작무용발표회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937년의 연감도 최승희가 1937626일 하치노헤(八戶)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이 공연은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을 떠나기 전에 단행했던 도구(渡歐)고별공연의 일환이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 두 권의 연감 덕분에 4회의 최승희 공연이 단번에 확인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 4회 공연의 세부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일자의 <토오닛포>를 조사했습니다. 1936429일의 <토오닛포>는 최승희 무용단의 아오모리 공연을 처음 보도했습니다. 최승희의 검무 사진을 게재한 이 기사는 올해 3월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독립하여 조선무용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최승희를 아오모리 최승희후원회가 초빙하여 벚꽃이 활짝 핀 53일 가부키자에서 공연회가 열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특이한 것은 최승희가 1935년 '3월'에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독립했다고 서술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문헌에 따르면 최승희가 독립한 것은 3월이 아니라 '4월'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불일치가 <토오일보>의 오보인지, 혹은 그렇게 믿을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또 이 시기에 아오모리에도 최승희 후원회가 조직되어 있었다는 점과 그 대표자가 오가사와라 호타루무라(小笠原螢村)라는 인물이었던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최승희가 독립 무용연구소를 꾸린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독립한 후 처음 아오모리를 방문해 공연을 가지게 된 최승희에게 이미 현재 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는 점은 신기한 일입니다.

 

 

아오모리 최승희후원회는 공연이 열리기 직전에 최승희를 둘러싸고 <조선무용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개최 장소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 좌담회 참석을 신청할 연락처는 보도했습니다. 아오모리시의 우라마치 하시모토 188번지라는 주소가 제시되었는데, 이는 최승희후원회의 사무실이거나, 그 회장을 맡은 오가사와라 호타루무라씨의 자택 주소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는, 최승희의 아오모리 공연을 즈음해서 <토오일보>54일자 신문에 최승희의 얼굴 사진을 내걸고 퀴즈를 냈다는 점입니다. “누구일까요?”라는 제목의 이 퀴즈에서는 조선에서 태어난 무용의 천재라고 알려진 사람, 오늘밤 아오모리시에서 공연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그의 이름을 엽서에 써서 8일까지 토오일보사 일요석간계로 보내달라고 했고, “정답자는 추첨을 통해 아름다운 상품을 보내드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토오일보>1936511일의 신문에 정답과 당첨자를 발표했습니다. “무용가 최승희씨입니다라고 정답을 발표했고, 당첨자 15명의 명단을 약식 주소와 함께 보도했습니다.

 

이 주소를 보면 당첨자 15명 중에서 11명은 아오모리 시에 거주했지만, 1명은 산노헤(三戶), 2명은 히로사키(弘前), 1명은 하치노헤(八戶)시 거주자였습니다. 아오모리 현의 각 주요도시에서도 최승희와 그의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뜻입니다. (jc, 2023/11/10)